민주당/장외투쟁 무거운 발길/여론 업고 나섰으나 실익 불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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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재야 연계… 운신폭 좁아질까 걱정/대안 내놓자니 「불가」 당론 어긋나/본회의·「특별국회」 거듭요구 “출구” 모색
민주당이 드디어 장외로 나갔다. 농민단체 등 각종 재야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궐기대회와 시위를 벌였다.
과거 야당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민주당에게는 정국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호기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는 밝은 표정보다 고민하는 얼굴이 역력하다.
야당 입장에서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다수 유권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제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투쟁을 벌이던 시절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민이 있는 것이다. 현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방대세는 인정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국민을 속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하다가는 민주당도 국민을 속이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예외없는 관세화가 대세라는 것은 민주당 의원들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이기택대표도 쌀문제가 터지자 가장 먼저 「정부의 정직한 발표와 개방을 전제로 한 대안 마련」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앞장서서 「대안」을 외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개방을 기정사실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 대안에 치중하다보면 쌀개방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결사반대의 당론과 배치된다. 민주당 최고회의는 6일 정책위원회가 마련한 개방이후 농업부문 지원대책을 검토했으나 이같은 이유로 발표를 미뤘다.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농촌지역 의원들의 경우 쌀개방 문제는 곧바로 표문제여서 적극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새정부가 들어선후 약화되긴 했지만 민주당의 후원세력인 재야 사회단체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일단 정부·여당을 몰아붙이는 방향에 섰다. 쌀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든 않든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국민을 속여온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는 명분이다.
○지지 계속에 의문
그러나 장외투쟁에 나서는 것은 특히 부담이 크다. 7일 서울역 집회에 이어 8∼12일까지 이어지는 시·도별 집회에도 최고위원급을 파견하고,지구당 차원에서 지원한다. 그러나 일단 개방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면 장외투쟁은 다수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겨울철인데다 도시지역에서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투쟁으로는 농민들에게 아무런 실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감정이 격해진 농민들의 행동은 통제하기 어렵다. 사활을 건 농민들의 과격한 행동이 빚을지도 모르는 정치적 책임을 민주당이 짊어져야 한다. 민주당이 6일 최고회의에서 『이 대회에서 나오는 구호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대회와 당의 차이를 분명히 해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고위원들은 『민주당이 여론의 지지를 업고 있다고 과수를 두면 안 된다』며 한계를 그었다.
○“과수말자” 조심
김영진의원 등이 추진하던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비준거부 서명운동을 이기택대표가 적극 만류했다. 막상 우루과이라운드협정이 만들어져 다른 나라들이 비준에 나서면 GATT를 탈퇴하지 않는한 비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상황이 올 경우에 대비해 운신의 폭을 없애는 것은 어리석다는 판단이다. 쌀개방을 진짜 막자면 야당으로서 비준반대라는 현실적인 수단이 있는데도 이것 대신 「국민투표」라는 불가능한 방안을 구호로 내건 것도 이런 고려 때문이다. 민주당은 할 수 없이 장외로 나서기는 했으나 가능한한 빨리 이 문제들을 국회내로 끌어들이고 싶어한다. 이 대표는 『우리가(장외투쟁을) 하고 싶어하는게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협상을 돕는 일이다』라는 말을 했다. 6일 의원총회에서 쌀문제를 논의할 본회의를 요구한데 이어 7일에도 거듭 「특별국회」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장외로 나선 발걸음을 어느 시점에서 되돌릴지 고민이다. 현재로서는 『협상이 끝나는 시점』(이기택대표) 이후를 생각하고 있으나 민자당이 국회에 판을 열어줄지도 불투명하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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