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집권당 대통령후보/하이트만 사퇴파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콜 총리 「최대」의 정치패배/“극우·여성편견” 거센반발에 굴복/「관례적」 여야 공동후보 진통예상
독일 집권 기민·기사당의 차기 대통령후보로 그간 야당은 물론 여당내에서도 논란이 돼온 슈테펜 하이트만 작센주 법무장관이 25일 대통령후보를 결국 사퇴함으로써 그를 지지해온 헬무트 콜 총리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하이트만은 이날 『헬무트 콜 총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후보에서 사퇴한다』고 밝히고 구 동독 사민당의 의원단장이던 리하르트 슈뢰더를 추천했다.
이로써 내년 5월말로 임기가 끝나는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현 대통령의 후임자를 둘러싼 여야의 협상은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게 됐다.
하이트만의 후보사퇴는 야당인 사민당의 평가처럼 콜 총리의 11년 재임기간중 최대의 정치적 패배로 간주되고 있다. 콜 총리는 자신이 추천한 하이트만에 대해 당내에서조차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지만 하루전인 24일 의회연설에서까지 하이트만 고수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콜 총리의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이트만은 결국 사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소문이 최근들어 무성했었다. 그만큼 하이트만에 대한 내외의 사퇴압력이 거셌기 때문이다. 극우성향에다 여성에 대한 편견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특히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아왔고,동맹국들로부터 문제인물로 낙인 찍힌 상태였다.
그는 『독일에 외국인들이 넘치고 있다』고 말해 극우파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보이는가 하면 『여성의 주역할은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해 여성들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하이트만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게 일자 콜 총리가 최근들어 그가 자진사퇴해주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콜 총리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겉으로는 일수불퇴 입장을 고수했었다. 어쨌든 하이트만의 사퇴로 독일 여야는 그간의 관례대로 여야 공동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의견을 절충하고 있으나 아직은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집권 기민·기사당이 이날 사민당에 공동후보 선출을 위해 협상하자고 제의했으나 사민당은 요하네스 라우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지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이트만이 사민당 소속으로 구 동독 출신이란 점에서 저격인물로 추천한 슈뢰더도 라우가 사퇴하지 않으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당지도부에 동의를 표시했다. 기민당과의 이견으로 힐데가르트 함 브뤼허를 후보로 선출해놓은 자민당도 일단은 이를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구 동독 인권운동가인 옌스 라이히나 로만 헤르초크 연방 헌법재판소장 등이 현재 후보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단일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독일 정치권의 밀고 당기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