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확률이 안 통하는 核의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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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잘 알려진 확률 게임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전염병이 도는 지역에 6백명의 주민이 있는데, A방법을 사용하면 2백명이 확실하게 목숨을 건진다. 반면에 B방법을 사용하면 6백명 모두가 목숨을 건질 확률이 3분의 1이고, 아무도 목숨을 건지지 못할 확률이 3분의 2이다. 이럴 경우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을 택하겠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2백명이 확실하게 살 수 있는 A를 택하겠다고 한다. 모두 죽을 확률이 있는 경우보다 2백명이라도 확실히 사는 쪽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달리 물어보면 상반된 결과가 나온다. 즉 A라는 방법을 택하면 4백명이 확실하게 목숨을 잃지만, B라는 방법을 택하면 모두 생존할 확률이 3분의 1이고 전원 사망할 확률이 3분의 2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B를 택한다는 것이다. 4백명이 확실하게 죽는 것보다 확률적인 쪽이 더 희망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통 사람들이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한다고 간주한다. 스키를 타는 것이 원자력보다 훨씬 위험한데 스키를 즐기는 사람도 핵 발전은 끔찍한 것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핵 발전이 화력 발전보다 안전하며, 핵 때문에 죽을 확률이 별똥별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주장한다.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의 경우는 사고 확률이 0이라고 강조하는 전문가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보통 사람들의 핵 공포를 비합리적이고 반과학적이라고 본다. 원전센터를 거부하는 주민의 목소리는 님비(NIMBY.내 땅에는 안 돼)식의 이기주의로, 심한 경우에는 몽매한 사람들이 마녀를 믿었던 것과 흡사한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사람들의 위험 인식에는 주관적인 것이 많다. 비행기와 자동차의 위험이 계산을 해보면 대략 비슷해도, 비행기를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러한 느낌이 단순히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일까. 비행기를 더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은 비행기 사고가 일어날 경우 그 참사가 훨씬 커 생존자가 거의 없으며, 자신이 꼼짝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상황에서 사고가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외국 사례조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위험을 확률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재앙의 정도, 통제 가능성, 형평성, 후속 세대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총체적으로 지각한다. 핵발전소와 원전센터는 이러한 총체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으니 주민은 이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는 원전센터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위험을 확률로 평가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실제 문제가 터졌을 때 결과를 고려해 위험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이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사고 확률이 0이라는 장담보다, 만의 하나 사고가 났을 때 자체적으로 신속한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과 설비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약속이다.

원전센터는 지금 모든 나라에서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미국의 경우도 네바다의 유카산 처리장이 10여년 전부터 교착상태이고, 스웨덴은 이 문제 때문에 내각이 총사퇴하고 핵발전소 1기를 폐쇄했지만 지금도 해결 가능성이 요원하다.

문제의 해결은 핵 위험에 대해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위험 계산에 주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바탕 위에 쌍방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재구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간과 대안이 없으니 너희가 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안 된다. 원전센터 부지 선정의 문제는 서로 다른 가치 체계 사이의 복잡하고, 정말 어려운 타협이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약력: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 박사. 토론토대 과학기술사 교수. 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