秀作 아시아영화 잇따라 개봉-칸 그랑프리 수상 패왕별희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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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해 유명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아시아권 영화들이 12월초잇따라 개봉된다.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중국의 陳歌감독의『패왕별희』와신인감독상을 받은 베트남 트란 안 홍감독의『그린 파파야의 향기』,그리고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대만 李安감독의『결혼피로연』등.
올해의 국제영화계는 중국.대만.홍콩등 이른바「3중국영화」에 의해 거의 점령당하다시피한 해였다.
연초의 베를린영화제에서 대만과 중국영화가 그랑프리를 공동수상하면서 시작된 중국영화 열기는 6월의 칸영화제에서『패왕별희』『희몽인생』이 각각 그랑프리와 심사위원상을 받으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런 열기는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비중있는 영화제인 10월초의 東京영화제에서도 중국 田壯壯감독의『파란 연』이 그랑프리를받음으로써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이번 우수 아시아영화들의 대거개봉은 아직도 세계무대진출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한국영화가 서구관객들과 만나기위해서는 어떤 점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있어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들중 가장 이채로운 작품은 우리에게 생소한 베트남영화인 트란 안 홍의『그린 파파야의 향기』.
50년대 프랑스지배아래의 베트남을 배경으로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 양가집의 하녀로 성장하는 소녀 무이가 주인공이다.10세때하녀가 된 부이가 어른이 되면서 사랑을 알게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하녀로서의 봉사와 여인으로서의 애정이 뒤섞인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감독은 안정된 연출력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올해 나이 31세인 트란 안 홍은 자신의 소년기 체험을토대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실제 배경인 베트남에 가지않은채 프랑스에서 완전히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패왕별희』는 중국 제5세대 감독중 선두주자로 꼽히는 첸 카이거가 세번 도전끝에 그랑프리의 영광을 안은 작품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개봉된『현위의 인생』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운면모를 보여주었던 그는 이 영화에서 심기일전,두 京劇배우의 50년에 걸친 우정과 애정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중국전통예술인 京劇의 화려함을 최대한 살린 촬영도 뛰 어나고 중국근대사의 파란을 주인공들의 삶에 적절히 연결시킴으로써 나름대로 사회적인 안목도 제시해주고 있다.다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화면구성등은 혹시 이 영화가 지나치게 영화제를 의식하고 만든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대만의 신세대감독 李安의『결혼피로연』은 전통적인 중국인의 가족관념과 뉴욕의 동성애문화와의 충돌을 경쾌하게 그린 코미디.
뉴욕에 사는 호모 주인공이 대만에 계신 노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가짜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동서양의 문화적 갈등을 깊이있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했지만 잘 다듬어진 연출이 돋보인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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