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실시 왜 논란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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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무가지 가려낼 기술·인력에 한계/김 대통령도 “정부 간여할 일 아니다”
김영삼대통령이 정부 각 부처 차관들과 조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ABC제도는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고 말한데 따라 신문·잡지의 발행부수를 조사하는 기구인 ABC협회의 중립성이 새정부의 언론정책과 맞물려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ABC협회의 중립성 논란은 20일 국회 문공위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ABC의 재정이 정부의 실질적인 통제하에 있는 공익자금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면서 일기를 시작했다.
야당 의원들의 주장은 89년 창립때부터 공익자금을 지원받아 정부의 언론통제 채널로 인식돼온 ABC협회가 새정부 들어서도 계속 공익자금에 재정을 의존하는 것은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ABC는 Audit Bureau of Circulations의 약자. 신문·잡지의 발행부수를 공정하게 조사,발표해 독자와 광고주에게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로 재정을 준국가예산인 공익자금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ABC제도는 본질적으로 광고주의 필요에 따라 운용되고 공익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도임에도 그동안 정부에서는 공익자금을 지원해가면서까지 ABC 실시를 종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협회가 창립되기 이전인 5공때부터 언론통폐합을 주도했던 허문도 당시 대통령비서관도 이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고 이원홍 당시 문공부장관도 이 제도의 실시를 요구하고 나선적이 있다.
ABC제도의 실시는 이러한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신문부수를 공정하게 조사하는 기술적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ABC협회가 결정한 부수조사방식은 발행부수·발송부수·유료부수로 나누어 조사하는 방식인데 우리나라처럼 무가지 투입이 많은 곳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구분해 조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ABC협회가 20여명 정도의 사무국 요원으로 전 신문의 부수를 실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ABC제도는 오히려 신문사간의 과당경쟁을 유발시켜 언론의 질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서울대 강현두교수(언론학)는 ABC제도의 부작용에 대해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ABC제도는 정착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자칫 과당경쟁에 따른 종이낭비,특정신문의 홍보자료로 이용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김경근교수는 『관이 주도하면서까지 언론에 무언의 압력을 가할 것이 아니라 신문사와 광고계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제도를 도입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남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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