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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어머니(9)이미 십여년 전,동양경제신문사가 펴낸 1934년 일본경제연보가 전하는 당시의 현실은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아래에서 신음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어떠했던가를 보여준다.그들은 이렇게 먹을 것이 없어 굶어가던 사람들 을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또 죽음의 골짜기로 끌어갔던 것이다. 「춘궁기! 그것은 계절적으로 몰아닥친다.조선 농민으로서는 공포에 떨어야 하는 시기다.3월부터 5월에 걸쳐 가난한 농촌에는 쌀도 보리도 옥수수도 감자도 다 팔아치우고 나서,수확기가 오기까지는,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어가며 허기를 달래야 하는 시기다. 전 조선에 걸쳐 펼쳐진 삼림보호망을 지키는 일은,굶주린 농민이 그 양식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의채취 때문에 불가능하다.
보통 가난한 농민들의 식량은 감자와 옥수수이며,만주 귀리나 밀가루는 최상품이었다.그러나 춘궁기에 이르면 이것조차 먹을 수가 없게 된다.지방별로 그 상태가 어떠한가를 보자.
강원도 정선군에는 전 주민 9천6백가구 5만3천4백여명 가운데 4만2천7백여명,전 주민의 약 80퍼센트가 식량이 전연 없는 상태다.영월군은 1만1천가구 5만4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지주 또는 부농인 1백여가구를 빼고 나면 단 한알의 곡식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다.기아선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 5만명을 넘어선다.삼척군에서는 1만1천여명이 완전 기아상태다.
인제군에서는 4만8천5백명이 나무껍질로 연명하고 있다.강원도산간지방에 살고 있는 화전민의 경우는 춘궁기만이 아니라 평상시의 주요한 식량도 감자와 옥수수이지만 지금 춘궁기를 맞아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 있다.
함경북도로 눈을 돌리면 여기에도 비참한 기근이 넘치고 있다.
길주군에는 3만3천여명,명천군에는 3만5천명의 주민이 굶주리고있다. 남쪽의 전라남도 보성군에는 5만7천5백여명이 먹을 수 있는 것이 그 무엇도 없는 상태다.」 같은 해 4월 경성일보는춘궁기를 맞은 농민들이 걸식을 하기 위해 대구로 몰려드는 비참한 현실을 전하고 있다.
「인근 지방에서 온 2천여명의 농민들이 겨울철에는 대구로 나와 남자들은 지게품을 팔고 여자들은 군고구마 장수를 하거나 빨래를 해주면서 살아갔지만 그나마 춘궁기에 접어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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