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2단계금리자유화>中.당국지도 눈치보는 금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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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단계 금리자유화가「언젠가」는 우리의 금융 환경을 뒤바꿀만한조치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없다.
그렇지만 實名制와 경기부진이라는「굴레」를 쓰고 있는 지금의 자금시장이 금리 자유화로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데에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마당에 금리 급등락의 여지가별로 없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당국이 내버려 두겠느냐는 것이다. 금리 자유화를 앞두고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선 이들의 움직임이 왠지 굼떠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랫동안 官治금융에 길들여져 온 금융기관들은 2단계 금리자유화 시한이 임박했음에도 이를 냉엄한「適者生存」의 현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預貸마진의 축소」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은행들의 경우 일부는 연초부터 금리 자유화 대응책을 연구해왔고 대다수가 대책반을 가동,圖上 훈련을 하고 있으나 아직은 대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특히 시중은행들은 금리 자유화를 위한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으나 소프트웨어가신속하게 따라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있다.
제일은행의 한 관계자는『올 초부터 금리 자유화의 필수 장치라할 자산.부채 종합관리 시스팀(ALM)구축에 나서 현재 4만여개 거래선의 신용도,收支기여도등을 분석해 놓은 상태이나 일선 대출 담당자들이 이같은 시스팀을 이해하고 운용하 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그동안 은행들이 정해진 금리대로 담보를 따져대출해주는 관행을 지켜오다보니 금리예측 감각이 거의 마비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부실채권이나 정책금융등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대출을잔뜩 안고있는 은행들로서는 서로 제살 깎아 먹기 식의 싸움을 벌이는 것에 한계가 있어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당국의「교통 정리」에 의지하게 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 고있다.
몸이 가벼운 단자사들은 은행들이 금리자유화에 포함시키자고 했던 표지어음이나 실세금리연동부상품(MMC)도입이 무산되는 것으로 정책의 가닥이 잡히자 다소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단자업계에서는 실명제로 기업이 아우성치는 상황에서 신용좋은 곳에 금리를 싸게 주고 나쁜 곳에는 금리를 더받는 철저한 수익성.안정성 위주의 영업을 정부가 그냥 두고 보겠느냐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편 금리자유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지켜온 기업들은 實名制에 정신을 뺏긴 탓인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기본적으로는 실명제 이후 정부가 펴온 對기업정책을 감안할때 당초 우려처럼 금리급등은 없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는 까닭 에서다.
S그룹 자금 담당자는『기업의 투자 수요가 없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아직 대출 금리를 올리기 어려우며 줄어드는 꺾기 부분이금리에 일부 옮겨가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면서『금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은행 대출을 축소하고 회사채를 좀더 다양한 조건으로 발행하는등 직접금융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금리자유화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꺾기가 줄어들고 자금을 지금보다 쉽게 쓸수만 있다면 금리가 다소 높아지더라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중견 의료 기계업체인 D社의 文昌浩사장은『금리자유화를 한다지만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영세 기업은 다른 나라 이야기와 같고 담보위주 대출 관행이 바뀌지 않을 바에는 중소기업도 그다지 나아질 것이 없다』고 분석했다.
〈李在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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