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파병할 명분 있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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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말리아에 한국군을 추가로 보내줄 것을 미국정부가 요청,정부가 이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소말리아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중인 국가 지도자들에게 보낸 친서형식의 이 요청을 두고 정부로서는 상당한 고충을 겪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말리아의 상황으로 미루어 추가파병은 바람직하지 않은데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이를 딱 잘라 거절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책 결정에 앞서 정부는 몇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될 것으로 본다. 우선 이 파병의 목적이다. 미국의 주도로 시작된 PKO는 소말리아의 내란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국민들을 구조하는 무정부 상태에서 벗어나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을 되찾도록 도와주는데 있었다.
우리가 유엔의 요청을 받아들여 상록수 부대를 보낸 것도 순전히 그런 인도주의 원칙에서였다. 내란으로 많은 기간시설이 파괴된 소말리아의 복구를 돕는다는 것이었으며 주둔지역에서 전투가 발생하면 즉각 철수한다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소말리아의 유엔활동은 당초 목표로 했던 평화라는 임무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PKO군과 소말리아인의 유혈충돌이 빚어지면서 앞날이 불투명한 전투로 발전해가고 있다. 유엔의 개입에 앞서 미국이 파병했을 때 환영받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많은 외국군이 공격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목숨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된 것을 두고 PKO군 지휘부의 잘못이 지적되고 있는 형편이다. 처음 PKO군이 희생당했을 때 현지의 유력한 지도자를 잡기 위해 노력을 집중,사태를 그르쳤다는 비판이다. 유엔의 활동이 원래의 목적을 벗어났고 실책과 과잉 투성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한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국가가 이 지역에 전통적으로 깊은 이해관계를 가져온 프랑스다. PKO의 일원으로 1천명 이상의 병력을 보내고 있는 프랑스 정부는 이미 내년 1월까지 전면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거듭되는 재고요청에도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말리아 개입을 주도하다시피 해온 미국도 내년 3월까지 철수할 방침이라고 대통령이 직접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소말리아에서의 평화회복 임무가 그때가지 완료될 것임을 전제로하고 있지만 실은 미군 희생자가 발생한데 따른 여론의 압력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태가 악화될 것으로 미국정부가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란평정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도적인 목적에서 상록수부대를 보낸 정부로선 이미 우리가 설정한 임무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철수한다는 기본방침에 맞추어 추가 파병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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