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갈등 화해로 승화-노벨문학상 수상 美모리슨 작품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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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프리카가 아니라 드디어 미국 흑인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졌다는게 무엇보다 기쁘다.많은 평자들이 나를 인종차별에 대항하는「분노의 천사」라 평하는 것은 나를 너무 부풀린 아첨에 불과하다. 나는 인종차별의 그릇된 인습을 잘라내겠다거나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단지 미국어나 미국언어예술에 유전되고 있는「검은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탈색하고 싶었을 뿐이다.』 미국인으로서는 11번째,미국흑인으로서는 첫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수상소감을 묻는 질문에『의외다.
그러나 이 상이 미국흑인에게 주어진 것은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그러나 모리슨은 그 큰 의미를 인종갈등과 대결 등 정 치.
사회적 관점에서 찾지않고 언어와 문학 내부에서 찾고 있어 주목된다. 70년 소설『가장 푸른 눈』을 시작으로 소설.희곡.에세이등을 정력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모리슨은 88년 소설『소중한 사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남북전쟁직후 노예의 굴레를 씌우지않기 위해 딸을 살해한 한 흑인여성의삶과 고통을 그린 이 작품은 87년 발표돼 美전역에 숱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팔려나갔으나 서적상이나 비평가상 어느 것도 받지못하자 흑인작가.평론가 48명이 항의성명을 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리슨은 평자나 독자들에게 인종의 굴레를주지않기 위해 두살난 딸마저 작중에서 살해하는「분노의 천사」라는 강한 인종적 이미지를 심게 됐다.그러나 스웨덴 한림원도 선정이유를『서사적 구성력,정확한 의미전달과 함께 시 적 상상력도갖춰 미국적 삶의 진실을 확장하며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밝혔듯 모리슨의 작품은 초기 인종차별에 대한 눈뜸에서 공감과 화해라는 삶과 문학의 본질로 나가고 있다.
첫작품『가장 푸른 눈』은 푸른 눈과 금발만이 아름다운,나아가인간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검은 눈을 가진 소녀의 푸른 눈을 갖고픈 강박관념을 통해 미국사회에서 지울수 없는 흑인의 선천적 굴레를 드러낸 자전적 성장소설이다.74년 발표된 『술라』에서는첫 작품에서 한 소녀의 강박관념으로 나타났던 흑백갈등의 양상이다소 바뀌어 흑인으로 남으려는 여자와 어떻게든 백인의 규범과 사회로 편입되려는 두 여자친구의 우정의 역학관계를 그리며 흑백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노예였던 과거를 잊고 자신들의 본래 모습을 찾으려는 흑인들을그린『솔로몬의 노래』(77년 발표),백인을 무조건 닮아가려는 흑인 중산층의 삶을 다룬『검은 아이』(81년 발표)등을 통해 모리슨은 흑백화합은 흑인의 정체성 확립과 잘못된 인습타파에 있음을 드러냈다.
흑백갈등과 관련해「분노의 천사」로 불리던 그녀가『아니다.나는칼도 원한도 갖고 있지 않다』고 수상소감을 밝힐 정도로 작품세계에 변모를 보인 것은 지난해 소설『재즈』를 발표하면서부터.뉴욕 할렘의 평범한 늙은 흑인부부의 애증을 다룬 이 작품은 빈틈없이 짜여진 구성,흐르는듯한 혹은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듯한 재즈 선율을 연상시키는 시적 문체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집계 연속 10주 수위에 오르며 미국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젊은 정부를 살해한 늙은 흑인,그 젊은 여자의 시체에라도 분풀이를 하고싶은 늙은 흑인 아내의 증오,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 『재즈』다.흑백갈등이 모리슨의 소설에서 이제 인간의 보편적인 내재적 갈등과 그 화해로 승 화되고 있는것이다. 프린스턴大 고전문학교수로 있는 모리슨은 미국문학작품에대한 비평적 에세이『어둠 속의 유희』를 발간,역시 베스트셀러로올렸는가 하면 뮤지컬『뉴올리언스』대본과 흑인지도자 마틴 루터킹을 기린『꿈꾸는 개미』의 극본도 창작했다.
문학성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를 끄는 작가중 하나인 모리슨의 작품은 80년『파란 눈(가장 푸른 눈)』(백양출판사)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이래 현재 『재즈』(문학세계사),『끝없는 방황(솔로몬의 노래)』(오늘의 책),『소중 한 사람들(소중한 사람)』(세종출판공사)등 4종이 시중에 나와 있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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