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가야할길>下.경제논리 살려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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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은 최근 실명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의보고 내용을 달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명제 초기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잡히더라도 이를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해 보고내용에 올리지 않다가 최근에야 그게 아니구나싶어 부정적인 견해도 보고내용에 같이 집어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부정적인 여론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실제 다른 경로를 통해 잡히는 시중의 여론들로 미루어 보면 현실 경제의 사정과 관련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司正 정국을 지나며 실명제가 전격 실시되기까지 새 정부가 일관되게 확인시켜준 것 가운데 하나가「정치.사회 개혁이 되어야 경제도 잘된다」는 국정운용의 원칙이다. 「先 경기회복」을 내건 新경제 계획과「여론의 지지」라는 호랑이에 올라 탄 司正정국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끊이지 않았지만 실명제의 전격 실시는 그같은 논쟁에 마침표를 찍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실명제를 「종합과세를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는「정치.사회 개혁을 위한 개혁중의 개혁」이라고 보는 대통령의 특별담화내용 뿐만이 아니라 現 실명제의 골격 자체도 현실 경제 보다는 정치.
사회 개혁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마침표가 찍어진 이상 우리 경제는 이미 싫든 좋든「돌아갈 수 없는 江」을 건넌 것이고,따라서 이제는 실명제의 내용 자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논의할 시점이 벌써 지났다. 그러나「先 경기회복」을 내걸었던 신경제 계획의 골격과 실명제 이후의 경제 운용을 어떤 쪽으로든 일치시켜야 하는 것은앞으로의 과제고 그 과제에 대한 해답은「이제 경제 논리를 회복하자」는 것으로 모아진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올해의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실명제는 연간 경제 성장률을 0.7% 포인트 정도 더 떨어뜨릴 것이라고보았다. 또 최근 작성된 한 경제부처의 내부 분석 자료는「신경제 1백일 계획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는경제적 요인과 비경제적 요인이 있으나 司正활동의 지속과 노사분규등 비경제적 요인이 보다 컸던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
이 자료는 경기회복이 늦어지는 경제적 요인은▲선진국 경기부진이 계속되고 있으며▲그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내부거래에 대한실지조사등 일부 대기업 관련 정책이 혼선을 빚었고▲기업 투자 활동에 조정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요인은▲과거 非理적발 위주의 司正활동▲現代 계열사의 노사 분규▲신정부가 反기업적 정책기조를 갖고 있지 않느냐는 업계의 우려▲실명제와 관련한 불확실성등의 非경제적요인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이 자료는「경제 논리 」의 목소리를분명히 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분석을 반박하는 주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정치.사회 개혁을 위한 비경제 논리가경제논리의 위에 있었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명제는 그만한 경제적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정치적 판단이 내려져 있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 논리의 회복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실명제의 뿌리 내리기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경제는 선택이다.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과거추궁에만 집착하는 정치.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는 없다.정부는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한다. 실명제를 전후해 신경제 계획은 학계와 업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비판들은 크게 보아 신경제가 총론에서는 자율과 창의를 내세우면서 각론에서는 가격억제와 같은 규제.계획 경제의 색채를 짙게 띠고 있다는 것과 단기적인 경기회복 에 실패했다는 것으로모아졌었다.
어느 쪽 비판에 귀를 기울이든간에 이같은 비판들의 공통점은「경제 논리를 살리자」는 것임을 실명제 이후의 경제를 생각하는 정부당국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金秀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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