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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탈출용 「의도적」 충격요법/중국 지하 핵실험 왜 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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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미관계서 대등성확보 겨냥/올림픽유치 실패 침체분위기 일신의도
1년만에 재개된 중국의 핵실험은 우선 미국이 핵실험의 전면중지 등 새로운 핵 비확산 정책을 국제정책으로 들고나오고 이를 위해 대대적인 국제캠페인을 실시하려는 시기를 앞두고 감행되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00년 올림픽 주최가 좌절당한 것이나 인권카드를 이용한 미국의 내정간섭,은하호 사건,대파키스탄 미사일 판매에 대한 비난 등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 의해 최근 계속 밀려왔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냉각까지를 염두에 두고,대내적으로는 침체된 국가적인 분위기를 일신해보자는 다중적인 목표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수파입김 작용
첸지천(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이 최근 유엔총회에서 핵무기의 전면철폐를 주장한 여운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이같은 핵실험이 강행된 것은 군부와 보사파의 입김과 함께 그만큼 손상된 중국의 위상을 제고시키려는 욕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핵의 과시가 평화에의 위협으로서 보다 실질적으로 「우대」를 받아온 국제사회의 생리를 경험으로 알고 있으며,외교적인 평화제스처와 핵실험을 병행함으로써 그동안의 수세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중국 국가주석겸 당총서기 장쩌민(강택민)은 오늘 11월 시애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담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서 클린턴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중국으로서는 그동안 불편했던 대미 관계의 개선에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클린턴이 주도한 94년 9월30일까지의 「핵실험유예」 체제를 의도적이라고 할만큼 깨어버린 것은 대미 관계에서 대등성 확보를 염두에 둔 신호라고밖에 볼수 없는 것이다.
○정상회담도 의식
다시 말해 미국이 최혜국대우 연장을 무기로 중국의 인권상황에 내년 6월까지 성의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는 종래의 방식을 뒤흔들고 상호 호혜와 대응관계임을 확인하는 충격요법으로써 핵실험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자신이 핵보유 5대강대국이면서 핵에 관한 자세한 제3세계의 입장을 고려하는 양면성을 유지해왔다.
중국이 핵보유 선진국의 논리로 구성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것은 지난해 3월. 미국·영국 등이 주도하는 NPT에 그만큼 일정한 거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NPT가 1995년 재연장되는 시한을 앞두고서 선진국들이 무조건 재연장을 주장하는데 반해 중국은 제3세계의 입장인 핵무기의 완전·전면·철저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어쨌든 국제평화를 명분으로 하는 서구의 헤게모니행사에 추종할 의사가 없음을 이번 기회에 재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법논리상으로 중국의 핵실험은 위법성이 없다. NPT규정은 핵보유국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반면 비보유국은 그럴 수 없는 「불평등조약」이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전면금지와 철저한 폐기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건적·잠정적으로 제기되는 핵실험 중지주장은 그 의미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중국정부가 이번 핵실험에 관한 성명에서 보인 태도는 바로 이같은 핵보유국이면서 동시에 핵의 전면폐기를 주장 하는 2중성을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형적인 이중성
중국의 핵실험은 따라서 비보유국인 북한을 고무시킬 직접적인 이유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중국도 성명에서 가급적 핵실험자제를 지지한다고 주장했으며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데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핵실험재개는 북한의 NPT탈퇴정책에 논리적인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중국의 견제논리도 설득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북경=전택원특파원>
◎중국정부 핵실험성명 전문
『1993년 10월5일 중국은 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했다.
중국이 소량의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자위를 위한 것이다.
지난 1964년 중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래 중국은 어느 시기,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중국은 또 비핵국가 및 비핵지구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위협을 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같은 근거에서 라틴 아메리카 핵무기금지조약과 남태평양 비핵화조약의 부속의정서에 서명했다.
중국은 오는 96년까지 핵실험 전면금지 조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공동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핵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우수한 핵무기 제조기술을 갖고 있는 당사자들이 마땅히 특수한 책임을 지고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활동을 제한하는데 솔선수범해야 한다.』
◎클린턴 대응을 보는 미 여론/“「눈에는 눈」식 대응 논리적 모순”비판/주도 해왔던 핵확산금지 캠페인 타격
중국의 지하 핵실험 실시로 미국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5일 중국이 서북부 로프노르에서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국에너지부에 내년 지하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미국의 핵실험 재개는 중국에 미칠 영향이 별로 크지 않은 반면 미국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핵확산금지 캠페인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어 클린턴의 「눈에는 눈」식의 대응이 오히려 자가당착적 논리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민주당의 칼 레빈상원의원을 비롯,19명의 미국의원들은 즉각 클린턴의 조치를 반대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전달하고 『중국의 핵실험에 미국이 핵실험 재개로 대응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7월3일 국제적 핵확산금지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94년말까지 15개월간 미국의 핵실험중단을 선언했었다. 그는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유엔연설을 통해 미국을 비롯,러시아·프랑스·영국 등이 동조해 시행중인 핵실험 중지조치를 영구화할 것을 제의하는 한편 현재의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보다 더 강력한 국제조약을 만들 것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유엔연설은 당시 핵실험계획이 이미 노출된 상태의 중국을 1차적 대상으로 삼고 북한 등 기타 핵개발의도를 가진 나라들에 대한 경곤 내지 위협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오히려 핵실험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미국외교가 논리적 모순에 빠져드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북한을 겨냥,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핵개발 저지노력을 펴고 있는 미국은 대북한 협상에서 설득력을 잃게 될 우려마저 없지않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7월 핵실험중지를 선언하면서도 네바다주의 핵실험기지를 계속 유지,실혐재개에 항시 대비하고 있으며 94년도 연방예산에 4억5백만달러를 핵실험용으로 예비해놓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 소식통은 『클린턴 대통령의 핵실험재개 준비지시는 중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미국이 핵실험재개를 거론하는 것은 미국이 핵실험재개를 위한 구실찾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번 핵실험 재개 지시를 계기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비판으로부터 당분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중 핵실험을 보는 각국입장/불,논평거부… 일,국제여망 저버려 유감/러,다른 핵보유국들 반응 봐가며 결정
중국이 지하 핵실험을 재개한데 대해 영국·러시아·일본·캐나다 등 서방국들은 5일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으나 프랑스는 유일하게 공식 논평을 유보했다.
▲영국=허드 외무장관은 이날 블랙풀에서 보수당 전당대회도중 가진 기자회견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 에너지부에 내년에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은 「매우 합리적」인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영국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의 핵실험이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핵실험 재개가 반드시 전면 핵금지조약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러시아=러시아 외무부의 그리고리 카라신 대변인은 『중국의 핵실험 재개가 전면금지협상 분위기나 핵확산금지조약(NPT) 경신 준비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비난했다. 카라신 대변인은 『옐친 대통령이 다른 핵 보유국들이 핵실험 유예조치를 준수하는한 이에 따를 것을 다짐했었다』며 『대통령은 다른 핵보유국들의 반응 등을 포함한 여러 요인을 감안한 후 핵실험 재개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세계 제3의 핵강국인 프랑스는 공식논평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리샤르 뒤크 외무부 대변인은 『프랑스 정부는 중국의 핵실험 재개에 대해 논평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일본=비핵국인 일본의 외무성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중국의 핵실험은 전면적인 핵 금지를 지향하는 국제적 여망에 반하는 매우 유감스러운 조치』라면서 『일본은 중국의 핵실험이 포괄적인 핵실험 금지협상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캐나다=페린 비티 외무장관은 『냉전의 다른 잔재와 함께 핵실험을 물리쳐야 한다는 국제적인 합의가 중국의 이번 핵실험으로 깨진다면 비극일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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