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과시대>27.에두아르트 푹스,풍속의 역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늘날 여성의 복장미를 완성케 하는「하이힐」(뒤꿈치가 높은 신발)이 왜 생겨났는지를 여성들은 생각해 본 일이 있는지.아마 하이힐없이는 하루도 나들이할 수 없다고 단언할 미인여성들은 이의문에 대한 두가지의 답변에 모두 당혹해 할 것이 다.
루이14세시대의 화려했던 파리에도 하수도시설은 아직 미비했다.포장된 길은 몇군데가 안됐다.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밤중에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데 요강이 필수물이었다.파리 시민들은 새벽이면 1층이든 2층이든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아■ 길바닥에 요강을 부어 버리는 행동으로 하루의 일과를 개시했다.
밤사이 비가 내린 아침은 큰일이었다.화려한 파리의 길바닥은 비와 진창에 인간의 오물이 섞여서 똥.오줌의 바다를 이루었다.
화사하게 차려입고,아침부터 화려한 사교장으로 나갈 파리의 여성들이 오물의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파리시의 구두방이 머리를짜낸 것이「굽이 높은 구두」다.파리의 구두방 주인이 아침마다 겪는 여성의 고민을 해결한 것이다.이것이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의 이유와 필요는 생태학적인 것이다.여성의 신체구조는 뒤꿈치를 높이 바짝 들고 발가락으로 설수록 아랫배가 탱탱해지고성기 주변의 근육이 탄력성을 갖게 된다.루이14세 시대의 파리에서 밤낮으로 유한미인을 번갈아가며 그 육체에 빠져살던 바람둥이 귀족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육체를 상품화한「귀족창녀」들은 경쟁적으로 신발의 뒤꿈치를 높이고 성기를 훈련시켰다.하이힐의 높이가 17㎝까지 올라갔다.파리미인의 발(바닥)길이와 같아진 것이다.즉 발이 수직으로 선 것이다. 그후 타락한 부르좌 계급의 섹스향락의 구체적 상징인 하이힐은 삽시간에 노동하는 민중여성 사이에 번져갔다.그러는 사이에「뒤꿈치 고인 신발」은 미인의 상징이 되고,全 유럽여성의 필수품이 되었다.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동양에까지 번져 아시아 여성미의 완성자가 되었다(사실은 동양 남성들은 파리의 귀족바람둥이들보다 몇백년 앞서 여성의 발을 어렸을 때 묶어버림으로써(전족)여성의 섹스감을 높일 수 있다는 악랄한 지혜를 갖■ 있었다 ).
이같은 재미있는 민속학적 지식이랄까,평범한 생활 뒤에 숨은 숱한「문화사회학」적 사실에 관해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독일민속문화연구가인 에두아르트 푹스에 의해서 쓰여지고 발간된『그림이 있는 풍속의 역사』에서다.
그것은 어쨌든,이 책은 인간사회의 도덕률.도덕관.도덕적 생활관습 등이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인간의 性행동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거의 2천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로 그려내고 있다.「그려낸다」고 말한 까닭은 이 책이 수천 점의 희귀한 그림.목판화.만화.벽그림.동판화.고증적 물체,그리고 시.속담.민담.민요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일상적 생활의 모든 모습,즉 복장.장식.연애.정조.결혼.간통.매춘.종교.도덕.풍속.신앙.윤리.규범.언어.철학.
역사.법률등이 性의 자기표출로 풀이되고 있다.그리고 섹스의 자기표출은 그 시대마다의 경제적 소유형태와 소유관계 의 다양한 인간생활적 표현임을 고증해 준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제일 먼저 전국의 도서관에서 끌어내 태워버린 책의 제1호가 마르크스의 저서고,제2호가「풍기문란한 음화집」이라고 매도한 푹스의『풍속의 역사』였다.정신병자같은 히틀러에게는 이 책이 그렇게 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풍속의 역사』는 민중의 눈과 행동양식을 통해서 역사를 본다.각 시대의 풍속이나 평범한 생활의 전모가 그 시대의 경제적 구조에 조응하는 것임을 당대의 수많은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 준다. ***어 떤 측면에서는 마르크스가 경제.철학.역사의 이론으로 체계화하려고 했던 역사발전의 추상적 서술을 민화.만화.민요.속담등 가장 낯익고 귀에 익은 표현물을 총동원해 읽는 이의손에 쥐어 주듯이,눈 앞에 진열해 주듯이 친절하게,그리고 쉽고즐거운 방식으로 가르쳐 준다.
서문에서 그 핵심적 부분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사람이 산다는 행동 어떤 형태도,어떤 요소도 반드시,그리고 예외없이,생활의 性的 토대에서 일정한 모습으로 적어도 어떤 특색을 지닌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인간활동(생활)과 性의신비스런 관계를 두고 하는 푹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책이 히틀러같은 인간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숭고한 지경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시대가 다르면 인간의 성행동도 각기 다른 작태로 변화시키고,그에 따른 생활상의 법칙을 꾸준히 변화시켜 왔다.그것은 마치상상을 초월한 자연의 힘으로,단순히 동물적.충동적 만족에 불과한 가장 낮은 극단에서부터,다른 쪽으로는 인간사 의 가장 높은품위를 지닌 행사까지,또는 창조적인 활동중에서도 최고봉을 이루는 지극히 숭고한 극단에까지 높여준다.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생활속에서 끊임없이 악의없고 즐거운 음담패설의 재료가 되어 주는가하면,어떤 말(語)도 몸씨도 가슴 이 저려드는 감능(感能)의 유희에 이르는 극단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책의 갈피를 넘기면서,유럽 군주나 귀족계급의 황금빛나는 침실 장막 뒤에서 전개되는 광란의 극치를 목격한다.중세의 秘境인 교회.성당.수도원.수녀원의 높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 섹스의 본태를 알게 된다.
에두아르트 푹스의『풍속의 역사』는 그와 같은 새로운 사실에 눈 뜨게 하는 해석과 설명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신이 창조한男과 女라는 두 성의 존재가 엮어내는,그 방대한 책을 꽉 채운그림은 황홀할 뿐이다.남과 여의 모든 행태의 박물관이고 미술관이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내가 처음 접한 것은 일본어版이었다.즐거움과 함께 푹스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나오는 사이에우리는 경제.정치.문화.종교.예술.역사.민속의 전 분야에 대한새롭고 깊은 인식을 갖추게 된다.그것은 희열에 찬 경험이다.몇십년전에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 람으로 말하면,나의 전공분야도 아닌 이 책의 일부를30여년 가까이 전에 어느 출판물을 통해 소개하자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놀라움과 함께 책을 보고 싶다는 주문이 쇄도했다.출판사의 관심도 대단했다.그러나 워낙 책의 분량이 방대하 고원문의 독일어가 토속어(土俗.民俗語)로 가득 차있는데다,색도 인쇄된 그림이 많아 출판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기술적으로 가능했다 하더라도 히틀러적 검열기준으로「포르노」취급을 받을 것이 뻔한 일이기도 했지만).어쨌든『풍속의 역사 』는 그것을 읽는 이의 인간에 대한,인간사회에 대한,그리고 東西고금의 인간문화사에 대한 인식의 수평을 활짝열어 줄 것임에 틀림없다.놀라운책이다. 李泳禧〈한양大교수.신문방송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