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독서실>로저 젤라즈니,신들의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고도의 유전공학을 이용하여 인간의 윤회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불사신이 된 소수의 지배자들에게 대항하는 한 혁명아를 그린 과학소설.
타임머신.로봇.우주전쟁 등을 소재로한 이공계 SF(Science Fiction:과학소설)나 환상소설에 익숙해 왔던 우리에게 처음 소개되는 문과계 SF의 대표작이다.
지은이 로저 젤라즈니는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면서 사회상을 짙게 반영하는 포스트 뉴 웨이브의 대표적 작가로 이 소설로 최고의 SF에 주어지는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원제는 『빛의 왕』으로 주인공의 별명중 하나인 마이트레야(미륵)를 뜻한다.
한 무리의 인류가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다른 행성에 힌두교 신화의 세계를 본뜬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최초로 정착한 제1세대들은 고도로 발달한 유전공학을 이용한 생리적.심리적 개조를 통해 브라만.시바.비슈누등 힌두신들의 속성과 힘을 지닌 채 끊임없이 환생을 거듭하면서 불사의 신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제1세대 자신들이 윤회를 거듭하며 낳은 인간들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제하고 카르마(業)의 심사를 통해 체제에 순응하는 것으로 판정된 자들만 다시 태어나게 하면서 지배한다. 이때 제 1세대 중에서도 고대 인도를 방불케 하는 카스트 제도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를 개혁하려는 자가 나타난다.
이 사내는 신들이 사는 천상도시를 탈출한 뒤 윤회를 거듭하며불타.시타르타.마이트레야등으로 불리며 신들에 대항해 반역의 기치를 올린다.
표면적으로는 타락한 지배구조와 종교 때문에 정체된 사회를 변혁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지만 힌두 신화를 소재로 복합적인 상징과 정교한 중층적 구조속에 세계와 인간의 모든 국면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플롯과 성격묘사.상징성등 소설적 요소들 사이의 균형이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는 작품이다.
과학소설이나 모험소설로서 충분히 재미있게 읽힐 수 있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그리고 상징성이 특히 돋보인다.SF 평론가 김상훈이 옮겼다.
〈정신세계사.4백22쪽.6천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