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돼지 세포 제공한 시카고의대 김윤범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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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평생을 바친 연구의 결과물이 모교를 위해, 그리고 조국을 위해 쓰일 수 있어 너무 다행입니다."

시카고의대 김윤범(74)교수는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팀의 '무균 돼지'복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학자다. 태어난 지 사흘을 못넘기고 죽었지만 무균돼지는 ▶사람의 장기와 크기가 같은 장기를 보유한 미니 돼지인 데다▶유전자조작을 통해 인간면역유전자(hDAF)를 보유하고 있고▶사람에게 영향을 줄지 모르는 균을 없애기 위해 완전 무균 상태를 유지한 무균돼지라는 세가지 조건을 갖췄다. 인간을 위해 장기를 제공하기엔 안성맞춤인 셈이다. 김교수는 이 무균돼지를 30여년간 한결같이 연구해 온 세계 최고 전문가로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돼지의 세포를 연구팀에 제공했다.

195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김교수는 60년부터 무균 미니 돼지를 연구하기 시작해 83년 시카고의대 무균 사육실을 짓는 작업을 지휘했다. 무균돼지를 연구하게 된 것은 면역체계의 발전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 가서 공부한 이유도 고국에 봉사하기 위해서였는데 70이 넘도록 돌아올 기회를 못찾아 항상 마음에 걸렸다"는 김교수는 "내가 키워낸 무균돼지로나마 고국에 보탬을 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서울대 이종 장기이식연구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수의과와 의대가 합쳐진 1백84명의 다제간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이종 장기이식을 성공시킬 것이란 점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런 확신이 없었으면 무균돼지를 제공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종 장기이식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미국조차 요즘엔 주춤한 것 같습니다. 바이오벤처들의 투자 위주로 진행되는데 요새 경기가 안좋으니까요.한국은 국가가, 그리고 대학이 지원의지를 확고히 갖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김교수는 요즘에도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반까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아직 완전한 이종 장기이식까진 실험실에서 5년, 임상에서 5년이 걸릴 정도로 갈길이 멀다"는 김교수는 "그러나 한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처음 세포 상태로 제공했던 무균돼지는 이달 중순 무균 우리에 실려 10여마리가 정식으로 시카고의대에서 서울대로 옮겨오게 된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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