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생활자 허리띠 더 졸라야(실명제시대의 세제: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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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소세 경감액,유가 추가부담의 절반수준/간접세 비중이 직접세 앞질러 「분배」 뒷걸음
봉급생활을 하는 근로자나 가계를 꾸리는 주부들은 앞으로 허리띠를 더욱 조여야 할 것같다. 소득세 면제점 상향조정이나 세율인하에 따라 줄어드는 세금보다 다른 세율인상으로 인한 추가부담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실명제 실시로 그다지 덕볼 것도 손해볼 것도 없는 봉급생활자들이 실명제로 당장 타격을 받게되는 것은 기업이나 사업자들을 의식한 이번 세제개편으로 일정부분의 짐을 대신 떠맡게 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임금은 오르지 않고 물가는 불안하기 짝이 없어 가계부의 주름살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세제개편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큰 직접세 분야의 세무담을 다소나마 줄여준 반면 알게 모르게 내는 간접세 분야는 대폭 강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직접세의 비중을 꾸준히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정부가 이번 개편에서는 방향을 반대로 틀었다. 실명제로 숨겨졌던 세원이 대거 노출되면서 높은 세율을 현실에 맞춰 낮춰달라는 요구가 밀려들었고 세수를 늘려야 하는 당국으로서는 이같은 방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조세 공평성 제고」라는 목표아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난 75년 전체 국세수입의 39.5%에 불과했던 직접세 비중을 지난해에는 52.8%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번 개편으로 인해 내년도에는 간접세 비중이 오히려 절반을 넘는 역전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몇년만에 대대적으로 세제를 뜯어고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재개편 결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이처럼 보통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다는 분석 때문이다.
우선 세부담이 줄어드는 부분을 살펴보자. 근소세율이 최고 3% 포인트까지 내려가기는 했으나 봉급생활자들에게 큰 변화는 없다. 6백만명에 이르는 봉급생활자들의 평균 월소득을 1백50만원 정도라고 볼때 종합소득세는 4인가족 기준으로 현재 6만5천원에서 5만6천원으로 9천원 줄어든다. 예년과 달리 올해에는 다른 특별공제가 전혀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로 부담이 줄어들 항목은 없다.
지출부분을 보자. 이 정도 소득이면 대체로 자동차 한대쯤 갖고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겨냥한 재원마련을 위해 휘발유의 특별소비세를 목적세인 교통세로 바꾸면서 세율을 1백9%에서 1백50%로 인상,휘발유 가격도 ℓ당 6백10원에서 7백18원으로 크게 올리기로 했다. 출퇴근을 위해 하루 왕복거리 40㎞를 주행하는 사람이라면 한달에 보통 1백50ℓ가량의 휘발유를 사용하게 된다. 이 경우 기름값 인상으로 1만6천2백원의 추가부담이 들게된다. 이것만으로도 소득세 경감분의 거의 2배 수준이 지출되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휘발유보다 환경오염 폐해가 큰 경유값을 더 많이 올린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세수증대에 치중하다보니 휘발유의 인상률이 경유보다 더욱 커져 가격차가 2.9배에서 3.1배로 오히려 벌어지는 모순마저 낳았다.
가계의 추가부담은 이뿐 아니다. 가정에서 취사용 또는 난방용으로 많이 쓰고있는 LNG는 이번에 10%의 특소세가 신설되면서 값이 입방m당 3백25원에서 3백44원으로 올랐다. LNG로 난방까지 한다면 계절에 따라 사용량이 다르나 월평균 1백입방m로 잡을 경우 한달에 1천9백원의 추가부담이 생겨난다.
가전제품을 보면 제품에 따라 특소세가 내리기도 하고 오르기도 했다. 예컨대 세탁기는 6㎏이하짜리가 20%에서 15%로 내렸고 6㎏ 초과짜리는 특소세(20%)가 신설됐다. 그러나 전체 세탁기 판매의 80∼90%가 용량 6㎏가 넘는 대형제품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때 세탁기를 사려는 사람들은 대개 20만원 정도의 비용을 더들여야 할 판이다. 이밖에도 드물게 접하는 위스키 값은 내리는 반면 서민들이 늘상 마시는 소주값은 오르고 유흥업소에 갈 경우에도 매상의 5%를 특소세로 더 내게됐다.
상속·증여세만 하더라도 세율은 내렸으나 달라진게 별로 없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성인 자녀에게 증여한다고 할때 공제액은 종전의 1천5백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높아지기는 했으나 세율은 최고 5% 포인트밖에 낮아지지 않아 성실신고를 유도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상속·증여세의 최고 세율은 개정후에도 50∼55%로 외국보다 여전히 높다.
결국 세수확보와 실명제 충격완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다소 어정쩡한 모양으로 마련된 이번 세제개편안을 놓고 경제계에서 먼저 반발이 나오고있지만 실제로 부담이 가중되는 쪽은 말없는 다수의 보통시민인 셈이다. 이 대목은 당정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국회 의결과정에서 어떻게 손질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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