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농구 빰치는 「미국정치」(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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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적자 축소계획」 하원투표 TV 생중계/막판까지 역전… 재역전… 흥미 만점
지난 초여름 NBA 프로농구 결승 시합을 보느라 온 가족이 연일 텔리비전 앞에 붙어 앉아 있었다. 한마디로 흥미진진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펼치는 화려한 기술과 박진감 넘치는 경기진행,타임아웃 0.5초를 남기고 작전타임을 부르는 벤치의 악착스러움,그리고는 기어이 역전의 장면을 연출해내는 롱슛,환호하는 관중들….
한국에서 보던 「농구」와는 전혀 다른 구기였다고나 할까. 굳이 구별하자면 그것은 영어대로 「바스킷 볼」이라고 해야지,장충체육관에서 보던 「농구」라는 이름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경기였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체험을 전혀 엉뚱한데서도 해야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마련한 재정적자 축소계획이 하원에서 결판나는 날 저녁이었다. 지루한 토론 끝에 저녁늦게야 표결에 들어갔고,이무렵 뉴스케이블 TV인 CNN의 래리 킹은 앨 고어 부통령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진행자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고어 부통령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재정적자 축소계획의 하원통과를 장담하고 있었다. 드디어 하원에서의 개표진행 상황이 TV 화면 한쪽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소한 차이가 계속되었다. 「찬성」과 「반대」의 득표수가 정광판의 주식시세 변하듯 달리지는 모습이 곧 바로 TV 중계되는 가운데 인터뷰는 계속되었다.
개표 후반에 들어서자 20표 이상의 차이로 「예스」가 앞서 나갔고,이에 따라 고어 부통령의 표정도 「그것보다」는 듯 한결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막판에 「노」쪽의 몰표가 나오면서 동점,역점,재역전을 거듭하는게 아닌가.
이미 결판이 난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던 고어 부통령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마지막 6표가 미개표된 상황에서 「예스」가 단 1표를 리드하고 있을때 킹은 고어 부통령을 코너로 몰았다.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초조합니까.』
『아니오. 초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아니 이 나라가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고어 부통령은 애써 태연하려 했지만 말이나 표정에서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2백18대 2백16으로 「예스」가 이겼다.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 고어 부통령의 표정도 확 피었다. 킹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마치 NBA농구의 결승전 중계를 연상케 할 정도로 땀을 쥐게 하는 광경이 끝까지 연출됐다. 방송진행이나 편집기술이 뛰어나서 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정치의 표대결 장면 자체가 프로농구 못지않은 박진감과 흥미를 느끼게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정치도 국민들이 보고 즐기기에 자못 흥미진진한 것이 아닌가. 지겹기만 하던 한국정치만을 봐와서 그런지 이런 모습의 미국정치가 신기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다음 단계인 상원은 또다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여당인 민주당 의원중에서 6명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50대50의 동수를 이뤘고,결국 의장의 캐스팅 보트로 간신히 통과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여의도 국회가 이쯤되는 상황이었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반란의원에 대한 징계파동부터 시작해 날치기 통과니,장외투쟁이니 하며 얼마나 요란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한국정치와 미국정치의 차이,그것은 마치 한국 농구와 미국 농구가 다르듯 그렇게 다른 것일까.<뉴욕=이장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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