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류… 생활은 삼류/일본인은 괴롭다(1달러 100엔시대: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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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출업자 갈수록 채산성 악화/폐쇄시장 구조에 흑자만 급증/뉴욕물가의 2배… “환차익 돌려라” 압력
한 나라의 돈가치가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나라의 대외구매력이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싫어할게 아니라 반겨야 할 일이다. 같은 돈으로 하나밖에 못사던 외국물건을 그 이상살수 있으니 소비자들로서는 싫어할 이유가 없다. 지난 2월 달러당 1백25엔선이던 엔화가 1백엔선에 이르렀으니 가치가 20%정도 높아진 셈이다. 이는 일본 사람들이 연초보다 20%쯤 미국에서 물건을 싸게 살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일본 소비자들로부터 이를 환영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소비자도 이런 판이니 엔고로 수출이 어려워지고 채산이 악화되는 수출업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 소비자들이 엔고를 반겨하기 않는 것은 엔화가치가 올랐다고 해서 물가가 싸지는 등 그 혜택이 소비자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일본의 산업구조때문이다. 일본정부가 2차대전후 경제입국의 기치 아래 오로지 산업육성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입규제 등 산업우선의 각종 보호조치를 실시해온 결과다.
그러나 일본의 이같은 산업우선 정책은 「산업1류,생활3류」라는 모순과 「엔화의 내외 구매력차」를 가져왔다. 자동차·전자로 대표되는 일본의 첨단 공장은 세계 최신설비를 자랑하는 반면 그 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생활 환경은 서구국가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다. 토끼장 같은 집,하루 3시간이나 되는 출·퇴근,공원과 도로부족,하수도 미정비,연 2천시간을 넘는 노동시간 등은 일본인을 일벌레로 만들었다. 쓰지 않고 저축만 한 결과는 대외적으로 엄청난 경상수지흑자를 가져온 원동력이됐다.
일 정부는 경쟁력이 있는 산업뿐만 아니라 농업 등 경쟁력이 약한 산업까지 모두 보호하기 위해 수입제한조치 등을 통해 일본을 폐쇄적인 시장으로 만들었다. 경쟁제한,신규참여금지 등 각종 규제조치가 취해졌다. 일본 국민총생산(GNP)의 약 40%에 이르는 업종이 정부의 규제하에 들어가 보호를 받고 있다. 정부규제의 상징인 인·허가 대상건수는 1만9백42건이나 된다. 또 수출산업은 세제면 등에서 철저히 우대조치를 받았다.
그 결과 일 정부의 규제하에 보호를 받는 업종의 물가는 국제수준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다. 엔고가 급속도로 진행돼도 폐쇄적인 시장구조로 인해 외국에서 싼 물건이 수입되지 않는 때문이다.
일본 소비자들이 엔고를 환영하기 보다 그로 인해 일본의 수출이 줄어 경기가 침체되고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으로 인한 산업공동화로 실업이 늘 것을 더 우려하는 것도 이같은 산업구조때문이다.
일본경영자단체연맹은 17일 엔고로 인한 환차익을 소비자에게 돌리기 위해 산업보호를 위한 각종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경쟁원리를 도입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환차익을 소비자에게 돌려 물가를 내리면 이는 그만큼 소득이 증대되는 효과를 가져와 소비가 늘어나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수입을 늘려 무역흑자도 줄이게 된다고 밝혔다.
일본이 이같은 시장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건전재정에만 매달려 대대적인 내수확대책을 쓰지 않을 경우 흑자는 늘어나고 이는 엔고압력으로 나타나 수출산업에 큰 타격을 줄것이다. 또 일본은 철저히 고립될 것이다.
교텐도유(행천풍웅) 동경 은행회장은 일본의 경상수지흑자를 삭감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국내경기를 부양하고 환차익을 소비자에게 돌리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미일간 산업구조를 조정하고 달러 베이스 무역구조를 엔화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산업정책이 지금까지 수출지향형으로 경쟁력이 강한 2차산업과 효율이 낮은 1차,3차 산업을 병존시키는,즉 모든 산업을 싸안는 것이었다』며 산업정책의 과감한 전환을 주장했다. 신정부가 각종 이익단체의 압력을 뿌리치고 이를 실현할수 있을지 주목된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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