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 『한 남자를…』 목순옥 『날개 없는 새…』|운명적 사랑의 삶 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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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 남자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했던 두 여자의 산문집이 출간됐다. 작가 서영은씨 (50)는 『한 남자를 사랑했네』 (미학사간), 올 봄 타계한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 (52)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청산간)를 최근 각각 펴냈다.
『내 삶의 두 큰 스승이었던 김동리 선생과 손소희 선생에게 바친다』며 이 책을 펴낸 서씨는 현재 병상에 있는 원로 작가 김동리씨의 부인이다. 87년 타계한 작가 손소희씨도 김씨의 부인이었다.
손씨 타계 후 문단의 스승과 제자 사이로 30의 나이 차를 넘어 김씨와 결혼했고, 그후 김씨의 나이든 자제들과 마찰을 일으켜 화제를 낳았던 서씨는 그래서인지 책머리에 『나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한데 대해, 한번은 공인으로서 세인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리라 생각해왔다』고 쓰고 있다.
자전적 에세이로 읽힐 수 있는 서씨의 『한 남자를 사랑했네』는 운명처럼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절망, 그러기에 찾아드는 여자로서의 짙은 행복 등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모두 4개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의 이야기가 한 주제로 모아져 한편의 운명적 사랑의 드라마를 이루고 있다.
제 1장에서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한 자신의 모습을 나뭇잎에 앉아있는 자화상에 비유하며 속사정을 털어놓고 있다.
제2장에서는 사랑하던 사람을 병석에 누이고 옛집에 돌아와 그와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사랑의 의미를 찾는 내용을 적고 있다.
제3장에서는 그 사랑을 선택했던 것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내재돼 있던, 운명의 끌 타래였음을 밝히고 있고 제4장에서는 홍역을 앓듯 치러냈던 사랑과 삶을 담담하게 끌어안고 있는 현재의 심경을 보여주고 있다.
『아내의 이름은/목정옥입니다.//내가 마흔 세 살 때에/서른 다섯 살 아내와/결혼했습니다.//결혼 초에는/아내가 다소/고생스러웠지만//요새는/아내가 카페를 하는 통에/유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목씨의 『날개없는 새 짝이되어』는 아내를 위해 위시 「아내」를 바쳐놓고 미처 발표되기도 전에 올4월 세상을 떠난, 천진무구의 시인 남편 천상병씨에게 되 바쳐진 이야기들이다.
67년 동백림 사건에 걸려 고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천씨를 극진히 보살핀 끝에 72년 결혼에 이르렀던 이야기, 철부지 같은 남편을 이끌고 변두리 셋집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이야기가 눈물을 절제한 담담한 문체로 그려지고 있다. 또 노후를 설계하는 엉터리 같은 천씨의 계산법, 장모의 장례비를 걱정하며 우는 시인의 그 천진무구한 기인적 삶이 한편의 코미디같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담담한, 혹은 우스운 이야기 속에는 세상 물정을 도무지 모르는 천생의 시인 천씨를 살려내고 천씨를 천상의 시인으로만 살아가게 한 목씨의 감춘 눈물과 사랑이 흥건히 배어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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