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길게 보면 "증시 호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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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전격적인 실명제 실시가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가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증권업계와 투자자들이 긴장하고 있다. 증시전문가들은 실명제가 일단 증시에 다소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과거 추이=실명제는 그 동안 수 차례 논의되어 왔고 이때마다 증시는 크게 출렁거렸다.
이·장 사건의 여파로 처음 실명제 실시 방침을 밝혔던 82년 7·3 조치의 경우 당시 종합주가 지수는 3일 동안 6.3%가 떨어졌고 고객 예탁금은 2개월 동안 무려 46%가 빠져나갔다.
88년 7월 28일 「91년부터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에도 대세 상승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한달 동안 5.8%가 하락했고 예탁금도 두 달 동안 28.2%가 감소했으며 최근의 3차 논의(93년 2월 25일∼3월 11일) 과장에서도 주가는 8.6%가 빠졌다.
일본(73년, 80년, 88년), 대만(88년 9∼10월) 등의 경우 실명거래 확대, 자본이득 과세 도입 발표이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해 계획이 일부 연기 또는 축소되기도 했었다.
◇부정적 요인=우선 가·차명 계좌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될 것으로 보인다. 가명계좌는 내부자거래, 투기성 자금 등 실명을 꺼리는 성향이 짙어 상당부분 증시에서 빠져나갈 전망이다.
그러나 전체 주식계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7월말 현재 계좌수의 1%, 금액 잔고 기준으로는 2.8%).
또 인출 시에는 어차피 실명화해야 하므로 아예 실명 상태로 전환, 잔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명 계좌의 경우 가명계좌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증시를 빠져나갈 가능성도 높다.
이름을 빌려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금 출처 조사를 받을 수도 있고 ▲96년부터 단계적으로 종합 과세가 실시되면 내야 할 세금도 늘게 돼 실소유자와 분쟁의 소지가 있다.
따라서 ▲일부는 실소유자가 세금 추징 등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명의 변경(실명화) 하겠지만 ▲상당부분은 96년 이전에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대신 인출해주거나 ▲아예 실소유자가 세금을 대신 물어주기로 하고 계속 실명인 것처럼 잔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차명을 이용한 대주주의 주식 위장 분산, 일반투자자의 소유 상한(지분율 10%) 초과 취득분 등은 처벌유예 기간(1년) 안에 매물화 될 가능성이 높다.
심리적인 위축도 문제다. 실명제 실시가 주가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불안감이 뇌동매매식 투매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 동안 수차례 실시 설이 나돌면서 어느 정도 단련돼 있기 때문에 그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만 일시적인 자금의 부동화 내지는 관망 상태가 빚어지며 매수세가 약화될 것으로는 우려되고 있다.
◇긍정적 요인=호재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실명제가 정착되면 ▲지하자금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단기투기성 자금의 유입이 억제되며 ▲거액의 인출이 신분 노출 등으로 부담이 되고 ▲시세 조작·내부자 거래 등 불공정 행위의 소지도 줄어들게 돼 장기적으로는 증시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부동산 투기, 해외자금 유출에 대한 범 정부 차원의 단속이 강화되고 사채시장이 축소돼 증시로 돈이 되몰릴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종합과세가 되면 주식의 불리한 점, 즉 배당률이 금리보다 낮은 점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가 있다. 기업은 불필요한 음성적 경비가 줄고 근로 의욕 고취에 따른 생산성 향상 등으로 영업 수지 등 내재 가치가 상승하며 이는 주식 투자의 이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증시 안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등)도 기대되고 있다.
◇종합 전망=일시적으로는 과거의 예에서 보듯 증시의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가명 투자 규모가 크게 줄었고(90년 3.9%이었던 가명계좌 잔고 비율이 2.8% 수준까지 감소) ▲토지 공개념·부동산 전산망 구축 등으로 실물 투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희박해진데다 ▲그 동안 실명제의 부정적인 영향이 주가에 이미 상당부분 반영됐기 때문에 위축의 강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를 하지 않기로 한 것도 부담을 더는 요인이다.
실명제 실시로 별다른 불이익이 없는 기관투자가와 외국인들에게는 실명제 충격이 주식 매입의 적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크게 위축될 필요는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호재일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으로 증시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기사가 넘쳐 「주가와 경제 환경」 시리즈는 하루 쉽니다)<민병관·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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