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그룹 해체는 위헌"|헌재 결정 이끈 두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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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5공 당시 국제그룹의 강제적 해체는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 뒤에는 이미 고인이 된 두 인권 변호사 조영래·황인철 변호사의 숨은 집념이 있었음이 밝혀져 고인을 기리던 주위사람들을 다시 한번 숙연케 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승소 가능성이 없다』며 모두들 외면하던 이 사건을 처음부터 맡아 고군분투 끝에 승리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황 변호사는 조 변호사의 뒤를 이어 뛰어다녔으나 두사람 다 오늘의 보람을 지켜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양정모 전 국제그룹회장이 기업을 뺏긴 한을 풀기 위해 여러 변호사를 찾아다니던 끝에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조 변호사를 찾아간 게 88년. 모두들『무모한 싸움』이라며 수임을 거절하던 이 사건을 조 변호사가 흔쾌히 맡은 것은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 등을 맡으면서 거듭 확인한『부당한 공권력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는 평소 신념 때문이었다.
조 변호사는 민사소송을 준비하면서 이 사건의 본질이「헌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공권력 행사」에 있다고 보고 89년 2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소장과 준비서류를 작성해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조 변호사는 헌법 소원을 제기하고 서울민사지법에서 1심이 진행중이던 90년 12월 지병인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조 변호사의 뒤를 이어 평소 의기투합하던 황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으나 황 변호사 역시 민사소송 1심이 끝나고 헌법 소원 심리가 한창 마무리 중이던 지난1월 지병인 간암으로 타계했다.
사건을 끝까지 맡아 결국 위헌결정을 얻어낸 김평우 변호사는『두 사람이 없었다면 결국 이번 승리는 없었을 것』이라며 고인들의 숭고한 넋을 기렸다.<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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