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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통합」난관/하나의 유럽 “찬물”/통화제도위기와 유럽의 장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독 고금리정책이 원인 제공/불 프랑화 평가절하 거부
유럽공동체(EC) 경제 및 통화통합의 주춧돌이될 유럽통화제도(EMS)가 창설 14년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독일과 함께 두 축을 형성해오며 통합을 주도해온 프랑스의 프랑화가 30일 EMS내 유럽 환율조정장치(ERM)에서 대마르크당 환율의 하한선을 돌파함에 따라 유럽통화동맹(EMU)을 향한 EC의 노정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이는 사실상 EMS의 뿌리 자체를 뒤흔드는 것으로 ERM의 붕괴는 결국 EC통합 자체가 벽에 부닥치게 되는 최악의 상태를 의미한다.
각국 중앙은행은 이날 프랑화가 기타 약세 통화의 안정을 위해 EMS출범이후 하루 투입액으로는 사상 최대인 3백억 마르크를 시장에 쏟아부었으나 환거래상의 투매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았다.
이번 혼란은 우선 독일의 고금리 정책에서 유발됐다고 볼 수 있다. 통독후 인플레·재정적자 등 심각한 국내사정 때문에 고금리 정책을 고수해온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ERM을 가까스로 유지해왔다. 분데스방크는 프랑화의 집중투매가 계속되던 29일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프랑화 지지에 나섰으나 재할인율 인하는 거부함에 따라 환투기꾼의 실망이 프랑화 대량 투매로 이어졌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예상돼왔다. 환투기꾼들은 지난해 9월이후 파운드화(영국)·리라화(이탈리아)·페세타화(스페인)·에스쿠도화(포르투갈)·푼트화(아일랜드) 등 약세 통화를 차례로 공약,평가절하를 유도했다. 이어 EC의 경제우등생이라는 덴마크 크로네화마저 굴복시킨 환투기꾼들은 마지막 희생양으로 프랑스의 프랑화를 도마에 올린 셈이다.
시세금리가 은행금리를 웃돌고 실업이 계속 늘어나는 등 경제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도 인플레 추방을 내건 프랑스 사회당 정권은 81년 출범과 함께 프랑 포르(강력한 프랑) 정책을 고수해왔다. 사회당을 계승한 우파의 에두라르 발라뒤르 총리도 프랑화의 평가절하는 곧 자신의 사임을 의미한다고 공언할 정도로 비중을 두고있는 정책이었다.
ERM을 방어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독일이 잠정적으로 ERM에서 탈퇴하거나 ▲프랑스가 평가절하를 단행하거나 ▲프랑스가 ERM을 탈퇴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프랑화와 마르크화간의 안정적 균형유지는 통화통합의 심장부인 독불동맹의 핵심으로,프랑화의 평가절하는 10년동안 실업의 대가를 치르며 쌓아온 프랑화에 대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짐을 의미한다.
독일도 자국 경제를 고려해 추가 금리인하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고 두 나라중 하나의 ERM탈퇴는 사실상 「ERM사망」을 선언하는 것이어서 그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는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있다.
경제 및 통화통합은 91년 네덜란드에서 EC정상들이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서명하면서 합의한 사항으로 내년부터 EMS에 이어 유럽통화기구(EMI)를 설치,제2단계에 진입하고 빠르면 97년 늦어도 99년까지 통화통합 마지막 단계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설립과 EC공동 화폐단위 에쿠(ECU)를 도입하기로 돼있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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