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천국” 러시아(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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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내 주요도시의 시내를 걷다보면 외국인들은 금방 이 도시가 상당히 많은 문화유산을 갖고 있으며 러시아인들이 문화를 숭상하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많은 고색창연한 건물들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적인 인물들에 관한 각종 기록물,기념 건축물,문학·음악 등 각 분야 예술가들의 활동무대였던 각종 장소들이 아주 정성스럽게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박물관이나 체호프박물관·고리키 박물관 등에는 이들이 숨을 거둘때까지 애장했던 책·노트·필기구·그림·담뱃갑·의자·침구 등에서부터 평소에 입었던 옷들에 이르기까지 신변용품,그들과 교유했던 당시 지인들의 사진·편지·애도사 등이 정성스럽게 수집,보관되어 있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아르바이트 거리만 하더라도 체호프가 신혼시절 살았던 집부터 시작해 유명 예술가들이 한때라도 거주했던 건물들에는 벽면에 조각으로 멋있게 장식된 기념관이 있고 이곳엔 언제부터 언제까지 러시아와 세계 예술계에 큰 기여를 한 누구누구가 살았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심지어 외국인인 베트남의 혁명 지도자였던 호치민의 거주지와 동상도 모스크바대학에서 별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가 한때 거주했던 크렘린 주변의 건물에도 이곳에서 몇년부터 호치민이 살았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석판이 멋있게 걸려있어 지나는 길손들에게 호치민을 항상 상기시켜주고 있다.
모스크바 등의 이러한 박물관에는 60세가 훨씬 넘은 노인들이 안내인겸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이 연금생활자들인 이들은 거의 모두 일하고 있는 박물관 주인공들의 열열한 추모자들이며 그중엔 박물관이 건설되기 전부터 역사적 인물들과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때문에 이들은 방문객에게 책이나 안내문 등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박물관의 주인공에 대한 각종 체험적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박물관이 살아있고 재미있으며 잘알지도 못하는 과거의 인물들에 대한 따분한 구경거리가 아닌 살아숨쉬는 생활공간의 기능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적인 건물만이 즐비하면서도 잘 정돈되지 않은 정도 6백주년이 된 서울,5천년의 문화민족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한국에 요즘 혼란의 극치를 달린다는 러시아에 존재하는 이러한 정도의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런 박물관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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