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안보」논의 정부차원 격상/아세안 확대외무회담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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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인권·환경문제도 포괄 협의/영토분쟁등 걸림돌… 「틀」마련 중점/한 외무,북핵해결 국제공조 강화 모색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 확대외무장관회담(ASEAN Post Ministerial Conference)은 탈냉전시대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치 안보대화를 양자차원이 아닌 다자차원에서 새로이 모색해본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2차대전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개별국가간 쌍무적 군사동맹관계를 맺어오던 아시아 주요국가들이 이제 유럽처럼 다자차원에서 안보문제를 협의해보자는 시도를 하는 셈이다.
물론 그동안 지역안보문제는 학자들이나 일부 관심있는 관리들 사이에서 학술차원에서 논의돼왔으나 이번 아세안 PMC를 기점으로 정부간 대화차원으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기성과 어려워
이번 회담에서는 참가국의 외무장관들이 기조연설을 통해 아태지역의 정치·안보문제를 어떤 형태의 다자간 대화에서 다루는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견개진을 활발히 할 전망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안보라 하면 주로 군사문제 중심으로 얘기됐으나 그 폭을 넓혀 경제·인권·환경·난민·마약·밀수 등 포괄적인 개념의 안보협력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지역다자 안보대화의 시동을 이번에 건다고 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려면 상당히 기간이 걸릴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아시아국가들은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이질성이 너무 많다. 전체적인 다자안보의 틀속에서 뭉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현안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예컨대 아직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안보개념을 어떻게 정립하느냐는 것도 문제고 두 강국인 일본과 러시아는 영토문제를 어떤 방향으로든 조율해야 한다.
또 동북아 지역에서는 아직도 냉전이 가시지 않은 한반도문제가 남아있고,동남아에는 남중국해 영유권문제가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다 아세안이 생각하는 지역안보대안화는 한국·미국·일본 등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새 협의체엔 이견
미국·한국 등은 동남아 국가연합(아세안)과 상호 보완적 기능을 하는 동북아 다자안보 대화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한미 양국은 이미 동북아 지역의 안보대화를 위해 미니 CSCE(유럽안보협력회의) 형태를 띤 「동북아안보협의회」를 구성키로 합의해둔 상태다. 이 안보협의회에는 좁게는 한국·미국·일본 등 3개국,넓게는 중국·러시아까지 포함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은 당연히 아세안 PMC 이외의 다자안보대화를 역내에 새롭게 만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는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 보다는 역내 다자안보대화에 대한 물꼬를 먼 훗날 각 회원국들이 역내 공동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어느 정도 규제하는 행동강령같은 것을 모색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증진도 논의
한국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다자적 지역안보협력 체제는 기존의 안보체제를 보완하는 성격을 가져야하고 ▲지역분쟁 문제는 원칙적으로 당사자들이 해결하고 ▲점진적 지역협력이 돼야 하며 ▲역내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안보대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천명할 방침이다.
한승주장관은 특히 이번회담에 주요 국가들의 외무장관이 참석하는 점을 감안,이들과 만나 북한핵문제 해결에 대한 국제적 공조체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한 장관은 또 아세안 국가들과 경제·통상 증진방안을 논의할 계획인데,92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아세안 교역량은 1백56억달러로 미국·일본·EC(유럽공동체)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의 교역 증가추세대로라면 아세안은 수년내에 우리의 3위 교역 파트너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 장관과 함께 재무부 및 상공자원부 관계자들이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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