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신임'이 총선 득표 전략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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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신임 열린우리당 의장이 '총선 정당득표율 1위가 곧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이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으로 선출된 뒤 첫 기자회견을 하면서 대통령 재신임을 거론한 것도 마땅치 않거니와 그런 기준을 내세우는 근거도 모호하다. 대통령 재신임 문제를 총선과 연계시킴으로써 표를 더 얻어보겠다는 총선전략으로 비친다. 개별 정당이 의석 몇 석 더 차지하기 위해 내걸 정도로 '대통령직'이 가벼운 자리인가.

鄭의장은 "법률적으로는 대통령의 임기와 총선은 관계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이 정당 투표에서 1등을 하면 국민이 盧대통령을 재신임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총선부터는 지지 후보와 지지 정당에 대해 각각 투표하는 1인2표제가 도입되기 때문에 정당 득표에서 열린우리당이 1위를 차지하면 이를 대통령 재신임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노무현 당'임을 인정한다는 말인가. 그동안 이를 강력히 부정해왔던 열린우리당의 입장이 새 당의장 취임을 계기로 바뀐 것인지 먼저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재신임과 총선을 연계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만 盧대통령에겐 불만을 가졌거나,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진 않지만 열린우리당은 싫어하는 유권자는 난감하다.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을 총선이 무효화하는 것도 가당치 않다. 더구나 정당 득표율을 재신임과 연결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 정당 투표에서 2위나 3위를 차지하면 대통령이 물러나겠다는 것인지 불투명하기 그지 없다.

무엇보다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런 발언이 끊임없이 나오는 게 문제다. 그 결과는 총선을 죽기살기식 게임으로 만든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으로 나라는 어수선하고, 기업활동도 잔뜩 위축돼 있다. 경제야 어떻게 되든 총선이 최우선이라는 식의 열린우리당의 정치행태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