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캐는 「콜롬보」/여의도의 폭로전문가 김운환(의원탐구:4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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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평화의 댐·수서사건등 터뜨려/금강산댐 사진 미서 3천만원에 사기도
요즘 「평화의 댐」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그것이 5공의 정권안보를 위한 상징 조작이었다는 혐의가 한층 짙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는 꼴불견인 이 댐 건설에 얽힌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뒤늦게 흥분하고 있다. 감사원도 감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이 댐에서 수상함을 느끼고 마치 「홍제원 인절미」처럼 끈질기게 댐의 이면을 파헤쳐온 의원이 있다. 민자당 김운환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88년 8월16일 국회 건설위에서 평화의 댐에 대한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그른 이날 북한 금강산댐 현장 사진과 주변 지도를 제시하며 5공정부가 선전한 북한의 수공위협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는 『정부는 북한에 해발 4백m 높이에다 총저수량 2백억t인 금강산댐을 쌓는다고 했는데 그 옆에는 댐 높이보다 낮은 해발 3백80m의 산이 있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 그같은 댐을 지을 경우 물은 도리어 북한쪽으로 역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86년 12월 금강산댐을 정밀분석한 미국 공병감실 자료를 내놓고 정부측을 추궁했다. 이 자료는 북한이 ▲해발 3백10m 높이의 댐에 37억t의 물을 가두려면 공사 및 저수 기간이 4∼5년 ▲해발 3백50m의 높이의 댐에 90억t을 저장하려면 공사·저수기간이 7∼10년 ▲해발 3백90m 높이의 댐에 1백85억t을 담으려면 공사·저수기간이 17∼22년 걸린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88올림픽에는 하등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북한의 수공으로 인한 올림픽 방해 우려설을 통박했다.
그는 이후에도 88년 10월 국정감사때와 89년 2월 임시국회 등에서 줄기차게 이 문제를 따졌으나 6공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법. 그의 열정은 새 정부 들어서 빛을 보게 됐다.
그는 지난 5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평화의 댐 문제를 재론했고,특히 친분이 두터운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의혹 규명을 적극 주장했다. 이에 박 실장은 그가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넘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평화의 댐 감사가 시작됐다.
김 의원은 폭로 전문가다. 특히 권력의 비리를 캐는데 남다른 능력이 있다. 그는 평화의 댐 말고도 굵직굵직한 것들을 터뜨렸다. 우선 88년 7월 임시국회에서 이른바 청남대 수문조작 사건을 폭로했다.
즉 『87년 7∼8월 태풍 셀마·다이너가 엄습해 대청댐의 수위가 급등하자 청남대측은 당시 휴양차 와있던 전두환대통령을 보호한답시고 댐의 수문을 열어 2억5천만t의 물을 일시에 방류,엄청난 인명·재산피해를 초래했다』는 폭로였다. 그는 이와함께 보좌관·비서를 공수특전 단복으로 갈아입게 한뒤 청남대 경계 안으로 침투시켜 망원렌즈로 찍은 청남대 사진을 최초로 공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89년 2월 임시국회에서는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가 경기도 안양에 임야 8천여평(당시 시가 12억원 상당)을 실소유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 인해 당시 청문회 정국을 조기에 종결하려던 6공정부와 민정당은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그는 3당 합당후 보스인 김영삼 당시 민자당대표가 민정계의 견제로 곤경에 처했을때 수서비리사건을 터뜨렸고 이로 인해 YS의 입지는 한결 나아졌다. 때문에 민정계에서는 사전에 폭로 내용을 전혀 몰랐던 YS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김 의원이 이렇듯 대어를 자꾸 낚을 수 있었던 것은 튼튼한 재력을 바탕으로 시간과 정력을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화의 댐 의혹을 폭로하기 위해 2년동안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금강산댐 주변 사진확보를 위해 미국의 정보사진 전문촬영업체에 무려 2천8백만원을 주고 사진촬용을 부탁했으며 평소 안기부·군관계자들에게 정성을 들여 결국 미 공병감실 자료를 챙겼다.
이순자씨의 안양땅 소유사실을 밝히기 위해 이 지역 토지등기부 등본을 거의 다 떼어 보았으며 청남대 수문조작을 폭로하기 위해 약 40일동안 수해현장에서 주민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청남대 주변을 조사했다.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김 의원은 대학졸업후 2년만인 76년 고향에서 주택건설업을 시작,울산개발 붐을 타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대학재학 시절부터 대학 선배이자 친형의 사돈뻘되는 서석재 전 의원과 잘 알고 지낸 관계로 야당시절의 김 대통령을 후원하게 됐으며 신임도 얻었다.
그가 정계에 공식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때는 87년 대선당시로 김영삼후보의 울산군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부터였고 그 이듬해 통일 민주당 전국구의원 자리를 획득했다. 금배지를 달자마자 전국구로서는 이례적으로 울산 중구지구당을 맡은 그는 3당 통합후 YS권유로 이기택 민주당대표의 터전이었던 부산 해운대에 진출했다.
이 대표는 그와의 대결에서 낙선을 우려해 14대 총선에서 전국구로 갔고 그는 지역구 첫 출전에 무난히 당선됐다. 태권도 공인 4단인 그는 지난 대선때 YS 경호대장역을 무리없이 해냈으며 이번에 민자당 예결위 간사를 맡았다.
그는 『예결위에서 의원들의 로비를 철저히 차단,예산편성이 정치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막겠으며 앞으로는 여당의원 답게 폭로보다는 정책개발에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당정이 채택한 부도유예제는 자신이 낸 아이디어라고 덧붙였다.<이상일기자>
□김 의원 약력
▲경남 울산(47세) ▲동아대 정외과 ▲통일민주당 부대변인 ▲13(전국구),14대 의원 ▲민자당 원내총무 ▲민자당 예결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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