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미래기금」증발 소동(지구촌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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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걸프전 당시 6백50억불 “묘연”/민선국회 들어선 뒤 쟁점부상
미래세대를 위한 비상기금으로 적립해둔 6백50달러의 행방을 놓고 쿠웨이트 조야가 벌집 쑤신듯 정치소요에 휩싸여 있다.
런던에 본부를 두고 이 기금을 관리해온 쿠웨이트 투자사무소(KIO)의 전 직원 22명이 고발조치되었으며 국왕의 친·인척 2명,KIO 전 최고책임자 푸아드 자파르 등이 쿠웨이트 정부 요청으로 인터폴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다. 쿠웨이트 검찰총장은 기금의 행방이 밝혀질 때까지 관련 혐의자 40명의 은행계좌를 동결했다.
또 지난주 쿠웨이트 국회는 KIO기금 행방불명 사태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의 기금은 쿠웨이트 왕가가 『매장된 석유가 고갈돼도 국민이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대비한다』며 소위 「미래세대를 위한 비상금」 명목으로 조성한 것이다.
지난 60년대초부터 석유수익금의 10%씩을 따로 떼어 적립해온 금액은 걸프전 직전까지 6백5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걸프전 직전까지 KIO측이 『텔렉스를 켜기가 무섭게 1억달러가 새로 송금됐다는 메시지가 날아들어 투자할 곳을 찾기가 부담스럽다』고 할 정도로 이 기금은 별 탈없이 불어만 갔다. 수명에서 수십명까지의 외국인 하인을 거느리며 풍족한 생활을 해온 쿠웨이트 국민들도 KIO의 기금관리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조차 않았다.
일의 발단은 지금 90년 8월 이라크의 침공으로 쿠웨이트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망명정부를 세우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자베르 알 사바 왕의 사촌이자 망명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알리 알 할리파가 KIO를 직접 관장하며 기금을 현금으로 바꿔 타이프 셰라톤 호텔의 망명정부 금고에 쌓아놓고 전쟁자금 명목으로 자의적으로 지출한 것이다.
다국적군이 이라크군 격퇴에 피땀을 흘리는동안 망명신세의 쿠웨이트 국민이 사치를 즐겼던 것도 이같이 풀려나간 자금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IO의 일부 관리들이 90년말부터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무시됐던 이 문제가 정식으로 쿠웨이트 정국의 초점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선거에 의한 쿠웨이트 국회가 출범하면서부터. 미래에 대한 근심을 잊게했던 기금이 1백50억달러도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쿠웨이트 야당의원들이 『미래를 대비한 기금을 정권안보에 탕진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진상규명을 위한 국회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현재 의혹의 초점은 걸프전과 무관하게 지출한 자금이 드러난 부분이다. 걸프전 이전부터 용도가 불분명한채 수억달러가 지출되었을 뿐 아니라 스페인에서의 주식투자 손실로 기록된 50여억달러는 왕족의 주식투자 이익을 돕기위한 들러리 투자과정에서 발생한 혐의까지 드러났다.
이 때문에 쿠웨이트 국민들은 이라크의 재침공 가능성이라는 현실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매장된 석유가 고갈될 경우에 직면할 가난이라는 미래의 위협까지 안게 됐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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