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2007대선릴레이칼럼③

남북 정상회담은 황금 코끼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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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침내 소문으로만 떠돌던 코끼리가 엊그제 모습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이달 하순에 만나게 됨으로써 모든 정치적 언어는 당분간 남북 정상회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상회담을 경건히 떠받드는 쪽(범여권)이나 이를 탐탁하게 여길 수 없는 쪽(야당)이나 모두들 앞으로 몇 주간은 정상회담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점에서 조지 레이코프가 지적했던 바와 같이 (코끼리를 상징으로 하는 미국 공화당이 최근 선거담론의 구조를 지배하면서 연속 승리했었다는 주장) 이번 대통령 선거 담론의 프레임은 노 대통령의 뜻대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코끼리는 과연 범여권의 화려한 컴백과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황금 코끼리인가? 여기에는 좋은 소식 하나, 불길한 소식 하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먼저 범여권에 좋은 소식. 선거의 승패가 이슈 설정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범여권은 그간의 열세를 만회할 일차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의 ‘경제 살리기’ 이슈에 압도당해 온 범여권은 이제 ‘평화’라는 카드를 앞세워 당분간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부활과 노무현 대통령의 원기 회복이라는 부수적 효과도 따라온다.

 게다가 남북 정상회담은 한나라당 후보들을 상당히 부담스러운 시험대에 올려놓는 효과가 있다. 정상회담에 대한 대응을 통해 한나라당의 두 후보는 일종의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받게 되었다. 또한 정상회담에 대한 후보들의 대응 양식에 따라 한나라당 선거인단(당원·대의원·일반국민·여론)의 향배가 이동하고 궁극적으로 경선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범여권에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길한 조짐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역설적으로 범여권을 포함한 진보진영의 능력의 한계를 보여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정상회담으로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간의 중대한 사안에 대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는 데는 실패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번 정상회담이 우리 모두가 아프간 인질사태를 통해 아프게 겪고 있는 중간국가 딜레마(middle power dilemma)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간에 억류돼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급격히 신장된 우리 국력의 딜레마를 보여 준다. 경제적 풍요와 그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은 아프간의 버려진 땅에서 봉사에 나서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납치되고 난 후 냉혹하고도 복잡한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우리의 귀중한 인명을 구하는 데에는 우리 국력이 아직 충분하지 못함을 요즘 우리 모두는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의 경제력은 북한을 대화의 무대로까지 나오게 할 수는 있지만, 북한을 책임 있는 이웃, 혹은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까지 변화시키는 능력은 아직 충분치 않을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큰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딜레마를 다시 보여 주는 무대가 될 수 있다.

 끝으로 여야 정치권이 기억해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지난번 1차 정상회담은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했던 핵심 인사들이 실정법 위반으로 사법적 처벌을 받는 오점을 남긴 바 있다.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은 통치권과 역사적 명분이라는 방패 뒤로 적절히 피신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남북관계에서 절차의 투명성과 개방성, 효율적 정책 집행이라는 목표들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는가에 따라 정상회담이라는 코끼리가 갑작스레 증발해 버릴 수도, 혹은 역설적으로 범여권 후보를 곤경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장훈 중앙대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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