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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대상 된 약사규칙개정(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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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의사와 약사간의 분쟁원인이 된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 경위가 사정대상에 올라 수사가 착수됐다. 이 분쟁으로 인해 4천여 전국 한의대생들이 유급의 위기에 몰리고,한의사들이 집단으로 면허를 반납하는 사태로 번졌음에도 보사당국이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정당국의 수사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일부 보도로는 문제의 시행규칙 개정 과정에서 약사회의 보사부에 대한 로비사실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철저한 수사로 이번 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길 바란다.
약사법 시행규칙의 전격적인 개정에는 의혹의 여지가 없지 않았다.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에 문제된 조항이 삭제된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으며,여론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아 입법예고의 뜻을 살리지 못했다. 특히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민감한 사안인데도 임기를 불과 이틀 앞둔 장관이 서둘러 결재한 사실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에대해 보사부측은 지난 91년 헌법재판소가 「약사의 한약조제는 위헌이 아님」을 판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의사측은 당시 위헌청구에 대한 판결은 「기각」이 아니라 「각하」 였으므로 최종판결로 볼 수 없다고 승복을 거부하는 입장이다. 이처럼 당사자들의 이견이 첨예하게 맞서 있는 문제를 사전 조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규화한 것은 사리에 맞다고 보기 어렵다. 분쟁의 소지가 충분히 예견되는 사안을 당사자들의 의견조정이나 설득도 없이 결정해버린 결과가 엄청난 분쟁의 화근이 된 것이 아닌가.
더구나 보사부내 관련부서의 협의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하니 석연치 않은구석이 너무 많아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사부 내의 위계질서와 의사결정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위 실무자들이 중간관리자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정책을 마음대로 주무른 꼴밖에 더 되는가.
사정기관은 이러한 여러가지 의혹과 정책결정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규명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문점과 잘못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러한 결정은 무효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관련자들은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로비나 금품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한 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몇몇 이익집단이나 관련 공직자들의 잘못으로 많은 학생들의 수업이 마비되고,학업 연마가 크게 결손되는 사태를 초래한 것은 결국 전적으로 정부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 문제의 약사법 시행규칙이 이번 분규의 해결로 결말이 난다 해도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법인 약사법과의 상충문제 등 앞으로 해결해야할 난제는 많다. 정부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당사자들의 이해조정에 머무르지 말고 소비자인 국민들의 의견이 어떠한가를 알아보고 반영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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