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시대「남성권위」에 식상|손봉숙<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몇몇 나라에서는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랏일을 맡아 거뜬히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무엇이 여성들을 정치계의 정상에서 일하게 하는가. 냉전이 완화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퇴색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이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민들은 질 높은 삶을 추구한다. 그동안 지속되어 온 성장위주 경제정책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부와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생활이 피폐 화되는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했다.
환경문제와 더불어 보건·사회복지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생활사가 정치적으로 풀어 가야 할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여성들은 자연스레 정치의 장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힘입어 사회가 다원화됨에 따라 다양한 계층이 사회저변으로부터 제각기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다. 노동자·농어민·청년층·여성 등 지금까지 소외되어 온 사회 제 세력들이 적정수준의 대표를 보내고 이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의롭고 조화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해야 한다는데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여성들은 주로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지역사회봉사활동을 담당하면서 생활행정을 익혀왔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일, 소외 받는 계층을 보살피는 일, 정의롭지 못한 것을 바로 잡는 일 등에 손길을 뻗쳐 왔다. 또한 소비자운동이나 환경보호운동 등에 이르는 다양한 시민활동을 통하여 민간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쌓아 왔다. 이렇게 길러진 리더십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합치되어 여성들을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 있다.
민주화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사람들은 남성 중심적인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에 식상해 있다. 여성의 리더십은 단순히 권력을 추구하고 행사하는 차원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도「지도하는 자」와 「지도 받는 자」들이 다같이 행복하고 잘사는 방향으로 정치상황을 진단하고 문제를 풀어 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