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출신 제이슨 리 마피아 보스 악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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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알 카포네가 마피아를 장악하고 있던 1940년대, 할리우드·시카고를 무대로 한 마피아의중간 보스로 악명을 떨치면서 암흑가에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겼던 재미교포 제이슨 리의 비상한 삶을 소설화한 책『제이슨 리』가 15일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는 드라마 작가로 명성을 떨치다 91년 타계한 김기팔씨. 유품을 정리하던 중 김씨가 써 놓았던『제이슨 리』원고가 발견돼 이번에 새롭게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70년대 초 라디오를 열심히 들은 청취자들은 기억할 수 있겠지만 『제이슨 리』는 당시 동아방송이 드라마로도 방송한바 있다. 김씨가 역시 극본을 맡았던 이 드라마는 작곡가 길옥윤씨가 제이슨 리의 이야기를 담은 녹음 테이프를 김씨에게 가져와 방송되면서『한국인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반응과 함께 높은 청취율을 기록했었다.
방송이 끝난 후 내용을 모아 책으로 펴낸 적이 있으나 당시 김씨는 문체 및 구성에 커다란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가족들의 얘기다. 김씨는 방송이후 제이슨 리의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 어떻게 해서든 다시 써 보려 하다 미처 원고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타계했다. 유고에서 미진한 부분은 이 책의 출판사인 폴리미디 어가 김씨의 문체를 살려 보충, 이번에 새롭게 나오게 된 것이다. 작곡가 길씨는 제이슨 리가 50년대 일본 요코스카에서 나이트 클럽을 경영하던 시절 색서폰 일류 연주자로 동경에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제이슨 리가 자신의 나이트 클럽에 밴드마스터로 고용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한국 명이 이장손인 제이슨 리의 일생을 이 책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902년 12월22일 광고에 의해 모집된 1백21명의 한국인을 태운 첫번째 이민선이 제물포를 떠나 하와이로 향했는데 이후 1905년까지 7천여명의 이민이 건너갔고 그중 5백41명이 어린이였다. 제이슨 리는 이 어린이중 한 명이었다. 하와이에서 아버지가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간 이후 제이슨 리는 고아원에서 3년을 보낸 후 화물선에 잠입, 미국 본토로 들어간다. 성장한 제이슨 리는 마피아와 인연을 맺게되지만 처음엔 작은 체구로 인해 많은 멸시를 받는다. 그러나 마피아단원들도 당시로서는 하기 힘든 싸움, 상대방의 코를 잘라내는 독기를 보이면서 「주먹」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는 47년 마피아의 대부 알 카포네가 사망하기까지 카포네의 비호를 받으면서 시카고·할리우드 지역을 관리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제이슨 리가 미국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한국에 들어가기 위한 전 단계로 51년 요코스카에 일본 최초의 카지노를 개장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도박을 전면 금지하고 있었으나 마피아를 배경으로 맥아더 행정부의 막강한 힘을 동원한 제이슨 리는 결국 카지노 개설허가권을 따내 떼돈을 벌었다.
53년 할리우드의 인기스타 에바 가드너가 예고도 없이 일본을 방문해 당시 인기 절정에 있었던 이 여배우를 둘러싸고 일본사회는 법석을 피운다. 그러나 뜻밖에도 에바 가드너가 찾아간 곳은 그의 카지노였다. 제이슨 리와는 오랜 친분이 있었고 방문 목적도 단순히 제이슨 리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에바 가드너의 부탁을 받은 제이슨 리는 할리우드로 날아가 데뷔 5년째 단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레이스 켈리에게 주연을 맡긴다. 그러나 제이슨 리도 아들이 경찰서에 끌려간 사건과 관련, 경찰관을 폭행하면서 사회문제가 돼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추방당한 제이슨 리는 필리핀 재벌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필리핀 대통령의 노력으로 일본에 재 입국하지만 다시 일본 기자를 폭행해 쫓겨난다.
할리우드에 돌아와 이성을 잃고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제이슨 리는 심복 찰리와 함께 모나코로 사기도박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5백만 달러를 거머쥔 제이슨 리는 찰리와 함께 프랑스로 국경을 넘다 사기도박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러나 며칠 후 둘은 조건 없이 경찰에서 풀려나는데 프랑스 국경까지 바래다준 경찰은 편지를 한 장 전 해준다.
「사랑하는 나의 제이슨.
1953년 봄날의 일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앞날의 행운을…. 그레이스로부터.」
당시 모나코의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가 옛날 은혜를 갚은 것이었다.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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