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의 사회 개혁운동 추적-정동규씨 『민적』5권 출간 『백정』3부작 마침내 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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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다 끝내놓고 보니 조금 심하다고 할만큼 긴 작품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제겐 80년 낙향 후 13년여 매달려온 작업의 결실이어서 정말 감회가 깊습니다. 10·26사태가 있던 달 고향에 내려와 정치적 억압이 왜 일어나며, 억압세력은 누구고, 억압을 당한 세력은 누구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억압 세력은 뻔하게 답이 나오는데 파헤쳐 들어갈 수가 없고,그래서 결국은 억압받는 세력의 상징인 백정을 소재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요. 자신들마저도 쉬쉬하며 피하는 그들의 삶과 소망을 다각도로 세세히 복원하려다보니 22권이 돼버렸습니다.』
정동주씨(44)가 최근『민적』5권을 웅진출판에서 펴냈다. 이로써『백정』(전10권·1988),『단야』(전7권·1992)에 이어 대하소설『백정』3부작이 총22권으로 완결을 보게된 것이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을 기점으로 1890년대까지의 농민·백정들의 삶과 투쟁을『백정』에서, 그리고 1890년부터 1910년대까지 엘리트층 백정들의 사회편입 과정을『단야』에서 다뤘다면 『민적』에서는 1920년대 국제사회주의 운동과 맞물리며 전개됐던 백정들의 사회개혁운동인 형평운동이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민적」은 조선시대의 호적을 일컫는 말로 전민들의 신분해방 상징이었다. 가장 천대받는 계층인 백정 엘리트들이 봉건적 신분주의와 비정을 혁파해 가는 치열한「민중사」를 쓰면서도 정씨는 그들의 풍속과 언어를 정서적 질로 잘 살려내고 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백정들을 찾아 나서 그들과 삶을 같이 했고 수없이 자료도 섭렵했습니다. 백정의 기원에 관해서는 10가지 학설이 있는데 나는 처음부터「두문동 72현설」을 믿었습니다. 쿠데타로 왕조를 뒤엎은 이성계에게 충성을 거부하고 산 속으로 들어간 고려 충신·열사 72명의 후손들이 조선시대 박해를 받으며 끝내 백정으로 전락했다는 것이지요. 그 학설에 기댄 작품 한 부분이 본의 아니게 역사 속의 한 인물에 누를 끼치게 돼 유감입니다.』
80년대 초 작품 구상 때부터 정씨는 여전히 신분노출을 꺼려하는 백정들을 찾아 전국 곳곳을 뒤졌다. 도축장에서 몇 개월씩 일하며 그들의 풍속과 언어도 체득했다. 또 1900년대 전후의 운동사·사상사를 찾아 국내도서관은 물론 일본·중국·미국·러시아까지 다녀왔다. 현장 취재와 자료 섭렵 끝에 이루어진『백정』3부작은 그 때문에『조선 천민사』나『전민풍속사』로서 읽힐 수 있는 대하소설이다.
『이 작품을 취재하고 쓰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었습니다.「백정 죽이고 살인시켰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개·돼지 취급도 못 받은 한 많은 사람들이지만 정작 소 잡을 때 행하는 그들의 의식은 엄숙하기 싹이 없었습니다. 칼마저「신팽이」라고 해서 소의 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신의 지팡이로 부르고 있으니까요. 개 목숨만도 못했기에 더욱 소중했을 생명, 그 생명에 대한 외경심의 집단 의지화를 이제 우리 사회도 실현해 나가야 될 때가 됐습니다. 그렇게 될 때 독재도, 차별도, 환경오염도 발붙일 수 없겠지요.』
83년 시집 『농투산이의 노래』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정씨는 장시『순례자』로 오늘의 작가 상을 수상한 시인 출신작가다. 정사가 놓친 부분들을 열심히 주워『백정』3부작을 뛰어넘는 소설로서의 또 다른 민족사를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시에 눈 돌릴 겨를은 없지만 지금도 좋은 시만 보면 시공을 초월해 버리는 깊이와 전율을 느낀다는 정씨는 문학, 나아가 예술의 맏형은 시임을 강조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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