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산바람』|사실성에 극적 재미 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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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금까지 농촌드라마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현실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극 속의 농촌은 도시인들이 추억 속에 간직한 평화로운 고향의 이미지로만 그려질 뿐 그 안에서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현실은 거세되기 일쑤였다.
가장 성공한 농촌 드라마로 손꼽히는 MBC-TV『전원일기』조차도 예외가 아니다.『전원일기』는『인정이 넘치는 농촌의 모습을 사실 감 있게 그려냈다』는 칭찬을 받으며 1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장수프로.
그러나 한편에서는『농촌의 밝은 면은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어두운 현실은 외면했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이런 비판에 대해 농촌드라마 제작진들은『가족 시청프로인 드라마는 너무 우울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보다 밝은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얘기한다.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는「도시에서 바라보는 농촌의 원경」을 주로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니터 단체나 방송비평가들은『도시인의 정서적 필요에 의해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농촌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농촌의 현실이 극적인 재미와 맞바꾸기에는 너무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사실 감과 극적인 재미를 동시에 얻기란 힘들다.
특히 성장정책의 피해자로그 현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많은 농촌과 같은 배경을 다룰 때는 더욱 그러하다.
리얼리티를 살려야 할 사안일수록 극적인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코믹연기를 통해 극적인 재미를 적절히 가미한 MBC-TV『산바람』은 새로운 유형의 농촌드라마로 주목할 만하다.
농촌드라마를 코믹 터치로 제작하는 것은 흔치 않은 접근 방법이다. 무거운 현실과 가벼운 터치를 조화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산바람』도 군데군데 보이는 자극적인 코믹연기로 전체적인 농촌의 현실이 희화화되는 듯한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농촌의 현실이라는 내용과 코믹연기라는 형식을 방법적으로 분리해 접근한다. 농촌의 현실을 사실 감 있게 그리면서 여기에 대해 지루해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코믹연기로 재미를 준다는 전략이다.
『산바람』은 지금까지 코믹연기 때문에 극의 사실성이 손상되는 인상은 아니다.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코믹 터치로 시청률을 올린다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심각한 터치로 농촌을 미화하는 것」보다는 훨씬 애정 어린 타협으로 보인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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