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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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양인들에게는 낮은 신이 지배하고 밤은 악마가 지배한다는 통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자연치 밤의 상징인 달이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보름달은 서양인들에게 거의 공포의 대상처럼 되어 있다. 예를 들어 13일 금요일에 보름달까지 뜨게되면 적지않은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할 정도다. 귀신이나 유령들이 나타나는 것, 또는 사람이 늑대로 변하는 것 모두 보름날밤에 이루어진다. 영화 「배트맨」의 로고가 보름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박쥐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는 거의 우리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 있지만 보름달을 배경으로 늑대가 음산하게 우는 것 또한 서양에서 유래된 것이다.
여기에 반해 동양에서의 보름달은 아주 좋은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추석날 온 가족이 모여 햇곡식과 햇과일로 지은 저녁을 마칠 때 동산위에 걸린 둥근달의 모습은 우리의 정서에 「태평연월」로 깊이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동양의 시와 문장이 보름날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양의 도깨비나 귀신들 또한 달이 없는 밤에나 행동하지 감치 보름날 밤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달은 모양에 따라 떠있는 시간이 정확히 정해진다. 예를 들어 달의 여러 모습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초승달의 경우 초저녁에만 잠시 보인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실수하기 쉽다. 배경이 되는 시각이 깊은 밤이나 새벽인데도 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을 묘사하는 그림·영화·문학작품 등이 의외로 많다. 두 검객이 자정에 만나 결투하는데 하늘에 초승달이 걸려 있다면 이는 완전치 엉터리.
초승달과 반대 방향으로 휜 모양을 갖는 그믐달은 새벽 동녘하늘에 낮게 떠있다 곧 여명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주로 비운의 주인공들에게 자주 비유된다. 그믐달은 유일하게 우리의 정서에 인상이 과히 좋지 않은 달로 자리잡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는 화투에서 좋지 않은 의미를 갖는 흑싸리 패에 그믐달이 나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보름달은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저녁때 떠 새벽에 진다. 군에서 보름날 밤 야간작전을 회피하는 이유는 달이 밝아서라기 보다 달이 밤새 떠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제갈량이 그러했듯 훌륭한 전략가는 천문현상에 밝아야한다. 예를 들어 세계대전이 일어나 알래스카에서 겨울에 야간전투를 해야 한다면 지휘관은 무엇보다 먼저 밤이 20시간정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박석재<천문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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