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제도와 관행 재검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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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덕진씨 형제의 검찰내부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가 이건개 전고검장은 구속,4명은 사표,또다른 4명에 대해서는 경위서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수사결과를 놓고 검찰 내부에선 검찰이 큰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획기적인 수사였다는 자평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그런 점도 있다. 검찰이 이처럼 대대적인 자체 수사를 벌이고 사법처리까지 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더구나 수사대상이 평검사도 아니고 고검장급만 3명이나 되며 그중 1명은 구속까지 되었다는데서 이번 수사는 검찰사의 한 장을 구성할만한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민 대다수가 이 결과에 만족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같다. 수사부터가 독자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로부터의 거듭된 지시에 따른 마지못한 수사였으며,그 결과도 검찰이 더이상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따라서 검찰은 「역사적 수사」와 대국민사과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혹의 눈길에서 벗어나긴 어렵게 됐지만 그러면 과연 어느 선까지 철저히 수사하고 사법처리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는 현실적으로 대단히 난감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큰 틀에서 볼때 이번에 드러난 검찰 간부들의 비리는 좁게는 검찰 전체,넓게는 사회 전체의 풍토와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비리와 부정이 발을 못붙이게 이제까지의 잘못된 제도,그릇된 관행을 포함한 근본적인 구조개선 작업이라고 믿는다. 도대체 어떻게 법을 집행하는 책무를 맡은 검찰 간부들이 문제투성이의 슬롯머신업자나 조직폭력과 그토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이번에 수사대상이 된 세명의 고검장급 검찰간부는 슬롯머신사건이 터지자마자 그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렇다면 그유착관계는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어떻게 그대로 용인되어 왔던 것일까. 풍토와 관행이 그러했고 구조가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런 유착관계가 슬롯머신업계 외에는 없는가.
반성과 다짐만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사만으로도 안된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구조적 개선책이 이번 기회에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과연 현재의 법조인 채용과 양성제도에는 문제가 없는가. 그 이전에 교육과정은 과연 바람직한가. 검사동일체원칙에 수술할 점은 없는가. 법조일원화문제도 심도있게 고려할만 하지 않은가. 정치권력과 검찰간의 관계를 새로 설정할 방안은 없는가. 특별검사제의 도입 필요성은 없는가. 정부와 검찰은 인사만으로 그칠게 아니라 이런 근본 문제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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