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당 정비(상)|「당의 영도력」확보 안간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김정일은 북한 각 부문에 대한 노동당의 영도력확보로 권력기반을 다졌다. 그는 후계체제를 다지는 방편으로 당 내부 정비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당 조직사상비서로 임명된 73년 9월이래 노동당은 유일 지도체제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당시 이 움직임을 외부에서 감지하긴 어려웠는데 전 북한고위관리에 따르면 이때부터 당 사업체계가 대폭 정비됐다.
우선「당적 영도체계」가 일사불란해졌다. 당의 영도가 거의 무조건·절대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당 조직이었던 만큼 김일성이 힘껏 후원했음은 물론이다.
70년대 전반기만 해도 당적 지도에 허점이 많아 각 부문에 영향력이 확고히 뿌리내리지 못한 감이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 적극 지원>
정권기관·군·사회안전기관등에서 당적 지도가 지금처럼 강하진 못했고 더러는 반발도 있었다. 군 행정위원장이 군당의 지도를 안 받으려는 분위기나 군당 책임비서가 대가 약하면 군 단위의 사회 안전부·국가보위부가 당을 깔보는 경향도 나타났다고 한다.
70년대 중반에 집중된 유일 사상 체제·유일 지도체제 강화로 77년쯤 되어 이런 경향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적 영도체계」를 세우는데 ▲조직생활·사상생활에 대한 지도체계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지도체계 확립이 중시됐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일 후계체제 확립과 함께 당의 영도를 강화하자「당 권위의 절대화」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는게 전 북한고위관리의 증언이다.
당의 지위·역할이 높아지면서 당 간부들의 행세주의·관료주의·행정대행주의라는 악습도 커졌다. 당이 정권기관 업무를 대행하거나 권력 기구화 될 소지가 다분히 있었다는 얘기다.
또 당 간부·당원들이 당 권위를 악용해 세도부릴 여지가 애초부터 있었다. 특히 좋은 성분 덕에 학교졸업 후 바로 당 간부로 배치된 사람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심했다고 한다. 정치적 훈련이 덜 돼있는 만큼 당의 권위를 자신의 영향력으로 착각한 탓이라는 설명이다.
전 북한고위관리는『김정일이 권력을 당에 집중시키는 한편 당 간부들의 행세주의·관료주의·행정대행주의를 뿌리뽑는 일에 착수했다』고 밝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 자체가 주민들에게 불신 당하고 끝내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 간부들의 악습을 바꾸는게 간단치는 않았으며 지속적 교양과 내부투쟁이 동반됐다고 한다.
예를 들어 중앙당에도 각 과별로 「당분조」 「당세포」가, 부별로 『부문당」이 있고 그 위에 「초급당」 「당위원회」라는 사슬구조가 엉겨있는데 바로 당분조·당 세포에서 소속당원의 관료주의·행정대행주의·세도를 막는 사상투쟁을 전개하게 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관료주의나 세도로 적발되더라도 비판 끝에 마무리하는 경향이었는데 70년대 후반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라도 각급 당 회의에서 당 세도나 관료주의·행정대행주의로 세 차례만 비판받으면 일단 현 직책은 그대로 둔 채「노동직장」에 쫓겨나 노동활동으로 단련을 받은 뒤 복귀하게 했다는 것이다. 노동직장은 관료주의·간부세도를 막기 위해 공장·농장을 따로 설치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쫓겨온 간부들이 이곳에서「습성이 바뀌었다」는 판정을 받을 때까지 계속 노동·상호비판으로 몇 개월 혹은 몇 년간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구통폐합 병행>
한편 당의「행정경제기관 업무」대행이라는 불 합리를 막는 과정에서 70년대 후반이래 당중앙의 집행부서 중 경제관련 부서가 유독 자주 바뀌기도 했다. 당 쪽에 불필요한 기구와 사람이 많을수록 행정대행과 행세 부리기가 잦을 것이기에 잇따라 기구통폐합과 간부축소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당기관내의 당 조직을 강화하는 조치도 동시에 이뤄졌다. 일례로 중앙당 「 당위원회」비서는 예전에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겸하던 것을 75년부터 제1부부장 급의 전임당위원장을 따로 임명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중앙부서 과장이 겸하던「부문당」비서는 부서 내 간부사업담당 부부장이 전임하게 급을 높였다. 그밖에 주민들이 몸으로 느끼는 군 당비서·부장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대책도 뒤따랐다고 한다. 주민들에게 공급해야할 물자를 지방당 간부들이 사전에 빼돌리는 일이 잦아 원성을 샀기 때문이었다.
70년대 중반 이전에는 주민들의 실 수요품(된장·간장 등) 공급상점은 군소매 관리소·군상업부에서 관할했는데 물자 배정표는 군당 경제부가 작성하는 폐단이 있었다. 자연히 군당 쪽에 배정표를 멋대로 작성해 당 간부들의「물자 빼돌리기」에 이용됐던 것이다.
전 북한고위관리에 따르면 이를 시정키 위해 김정일이 군 상업부장·군소매 관리소장에게 물자 배정표를 직접 작성케 하고 상점을 직접 관리하도록 했다. 군당 등 하급 당이 행정경제부문의 업무를 대행하면서 부정행위를 일삼는 곳에서는 대개 유사한 조치가 취해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직권남용·부정으로 처벌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