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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세탁 역추적 “007작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검찰 등 40명,안영모행장 등과 머리싸움/차량일지 뒤진끝에 가명계좌 단서잡아
민자당 이원조·김종인의원,이용만 전재무장관 등 6공실세들의 수뢰사실이 밝혀진 동화은행 비자금조성사건은 수사팀의 집요한 추적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묻힐뻔만 사건이었다. 안영모은행장이 구속되면서 「세탁한 돈 역추적」을 맡았던 대검의 함승희검사가 털어놓은 이 추적작업은 머리좋은 사람들끼리 벌이는 「007작전」 같아서 흥미롭다.
돈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 「돈세탁의 귀재」들이라 수표추적작업은 한마디로 이들과 수사팀과의 머리싸움이었다. 안 행장이 『돈을 가져오라』고 지시하면 영업부는 두말않고 현금인출로 서류를 조작해 수표를 발행한뒤 시중은행에서 다른 수표로 바꿔오는 등 안 행장이 쓴 모든 돈은 발행때부터 철저히 세탁돼 있었다.
수사팀은 고심끝에 안 행장의 비밀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날의 동화은행 차량운행일지를 뒤져 차량들이 들렀던 타은행지점들을 모두 훑기 시작했고 드디어 안 행장의 성에 동화은행 이름을 붙인 「안동화」명의의 계좌 등 가짜 계좌를 발견해 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가짜계좌가 드러나면 당일 거래된 이 은행의 모든 전표·컴퓨터자료를 정밀 점검,현금인출로 위장한 돈의 흐름을 쫓아다녔다.
최근에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가명계좌를 만들기,세탁한 돈으로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를 매입하고 다시 현금인출한 것처럼 꾸미거나 사채시장에서 수표할인(속칭 와리깡)을 해 뒤섞는 방법,은행의 영업1부와 2부를 하루에 10여차례나 왔다갔다하며 계속 인출자 이름을 바꾸는 방법­. 수사팀의 추적은 천신만고의 연속이었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6공실세들의 세탁방법은 철저했으나 92년초 안 행장으로부터 돈을 받은뒤 각자 독특한 방법으로 적어도 20차례 이상씩 세탁한 것으로 마침내 드러나고 말았다.
1등 이용만,2등 이원조,3등 김종인­수사팀이 내린 이들의 세탁능력 평가점수다.
함 검사를 포함,20명이던 수사팀은 추적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세청·은행감독원직원들까지 지원돼 40명으로 늘어났고 3인1조로 구성된 수사팀은 안 행장이 구속된뒤 한달이 넘도록 시중은행 지점 전부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검찰의 도피 방조설,정치권의 타협설이 나도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이 사건은 여론의 비상한 관심속에 결국 수사팀의 피나는 노력이 결실을 거뒀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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