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국제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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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복마전: 국제정치의 민족문제(Pandemonium: Ethnicity in International Politics)』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저·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
냉전종식 이후 유럽과 구 소련에서는「민족주의 전쟁」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족의 자주성을 주장하는 민족자결의 원칙이 세계의 안정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인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때 인민이란 과연 어떤 대상을 말하는 것인가. 저자는 어떻게 하면 민족갈등을 제어할 수 있으며 세계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고 있다.
모이니핸은 지난 70년대 후반 유엔주재 미국대사로 재직하는 동안 구소련이 팽창하고 있을 때보다는 해체될 때 더욱 세계의 안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정부를 포함해 아무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모이니핸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이른바 민족자결주의가『이기주의를 이상주의로 잘 포장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또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랜싱은 민족자결주의가 갖는 폭발적 위험성을 예상하고 있었다. 랜싱은 민족자결주의가「합병열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고 역사는 그의 말대로 전개됐다. 현재 유엔은 국가주권과 민족주권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모이니핸은 지적한다. 국제정치상 단일민족국가라는 실체는 단 7개국뿐이다.
제1차대전 승전국들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오스만투르크 등 패망한 국가들에만 민족자결주의를 적용했다. 자신들의 영토는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모이니핸은 민족주의가 인류역사에 남긴 해악들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게르만족·슬로바키아인·러시아인·그리스인·터키인·아르메니아인·유대인이 모두 조화롭게 살았던 로마제국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국제사회의 앞날에 대해 비관적이다. 새롭게 출현하는 국가에 기대할 것은 없으며 지구상의 다른 지역도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국가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치로 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이때 민주주의란 인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다. 저자는 또「계층화된 통치체제」즉 연방제를 민족주의가 빚어내는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192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태어난 모이니핸은 하버드대 교수·유엔대사를 역임했으며, 77년이래 미 상원 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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