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전·의경이 얻어맞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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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해 스무살인 서울경찰청 제2기동대 소속 박민수 일경은 장차 컴퓨터제조 분야에 종사하고 싶어한다. 이제 그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지난 5일 택지개발 추가 보상금을 요구하는 집회를 저지하다 왼쪽 눈을 실명한 것이다. 시위자 한명이 피켓으로 수은가로등을 깨는 바람에 가스가 터지면서 튄 유리 파편에 맞았다.

그는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1년 전공하다 휴학하고 지난해 7월 의무경찰에 입대했다. 아버지가 공인중개업을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데다 군 문제를 미리 해결해두는 게 취업에 유리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육군에 가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해 의경을 선택한 것이다.

새해에도 집회.시위의 폭력성은 여전하다. 목적이 무엇이든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집회는 시작된다. 이 와중에서 시위대와 맞서는 전.의경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도로의 수개 차로를 점령한 시위대의 가두행진으로 인한 교통체증은 목숨을 위협받는 전.의경에 비하면 약과다. 집회가 집중된 경찰병원 응급실은 피투성이가 된 전.의경들로 야전병원이나 다름없다.

쇠파이프에 낫을 용접한 흉기로 팔뚝을 찍히고, 물에 장기간 담가 단단해진 몽둥이에 맞아 인중을 30바늘 꿰매고, 쇠파이프에 맞아 팔목이 부러지고….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휘발유를 담은 드럼통, 불붙인 LP가스통 등 날로 새로워지는 신종 시위무기에 전.의경은 무참하게 무너진다. 지난해 11월 초 노동자대회에서 6년6개월 만에 등장한 화염병은 최신형이다.

추격하는 전.의경이 잘 넘어지게 하는 식용유와 옷에 불이 붙었을 때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설탕이 들어있을 정도다. 지난해 7백49명의 전.의경이 시위대의 공격으로 다쳤으며, 이중 4주 이상 치료를 받은 중상자도 54명에 이른다. 재작년 부상 2백80명, 중상 7명에 비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것으로 날로 과격해지는 시위의 양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의경의 보호장비는 방패와 진압봉, 대나무가 든 겉옷이 고작이다. 새총으로 쏘는 볼트.너트 앞에 머리보호용 플라스틱 파이버는 무용지물이다. 전.의경은 3만2천여명으로 육군 병력 중 훈련소에서 차출되는 작전전경과 지원제인 의무경찰로 구성돼 있다. 군복무를 대신해 경찰에서 근무하는 우리의 이웃이요, 형제요, 자식이다.

시위대가 호칭하듯 전.의경은 '정부의 개'가 결코 아니다. 정부의 위임을 받아 사회질서 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다치지 않고 입대 때처럼 멀쩡하게 제대하는 것이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에 대비한 훈련을 받지만 시위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초긴장하는 전.의경을 보호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금년을 정치개혁과 경제 살리기의 원년으로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위 폭력의 공포에 떠는 전.의경을 구해내는 것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미국 경찰은 시위대가 의사를 평화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물리적 수단을 사용하면 가차없이 진압한다. 프랑스에서는 화염병과 같은 인명 살상 가능성이 있는 흉기를 소지만 해도 엄벌한다. 평화적인 시위문화가 정착하려면 엄정한 법집행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집회의 성격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시위 주체들에게 내성만 길러줄 뿐이다.

폭력시위 자제를 촉구하는 캠페인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사회적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집회의 탈법과 불법에 대해서는 경찰력을 강력하게 행사하는 것이 전.의경의 안전을 보장하고 비폭력적인 시위 문화를 점진적으로 함양하는 지름길이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