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碑文에 새겨진 '우리역사 고구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신간 '고대로부터의 통신'만큼 출간 타이밍을 절묘하게 맞춘 책도 만나기 쉽지 않을 듯하다.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이다. 이 책은 민족감정을 격하게 토해놓는 수준을 넘어 '역사 분쟁'의 본질을 차분하게 짚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고대로부터의 통신'은 고구려를 포함해 고대 동북아 역사에 대한 개설서다. 이 책의 강점은 다소 낯선 '금석문(金石文)'으로 고대사 문제를 살펴본다는 점이다. 금석문이란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에 새긴 글씨를 말한다. 금석문은 고대 역사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1차 자료다.

고구려만 해도 고구려인이 쓴 역사서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중원 왕조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중국 측 자료를 일방적으로 해석, 고구려를 중국 변방 정권의 하나로 왜곡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루는 '광개토왕릉비문''모두루묘지''중원고구려비'의 금석문은 고구려 시대의 실상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 할 수 있다.

고구려 금석문을 보면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天下觀)이 보인다. '모두루묘지'에 나오는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문구를 통해, 중국 중화문명과 별도로 당시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또 하나의 동북아 세력권을 형성했던 고구려의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금석문 또한 당시 사람들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삼국시대 금석문 중 가장 많은 글자를 새겨놓은 광개토왕릉비문만 해도 글자 수가 1천7백75자 정도고, 또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까지 고려하면 금석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퍼즐 게임을 푸는 일과 유사할 수 있다.

여기에 후대인들이 그 비문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춰 해석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문제를 푸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일본 학자가 식민지 시절 이래 지금까지 광개토왕릉 비문을 자국 중심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책을 기획한 임기환(한신대 학술원 연구원) 박사는 "광개토왕릉 비문 가운데 겨우 20자에 불과한 문장을 놓고 수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이는 1천5백년 전의 비문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근대 한.일 관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이용한 결과"라면서 "최근 중국까지 나서서 고구려사를 자국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을 보면 광개토왕릉비가 현대 한.중.일 3국의 '역사 만들기'의 증언자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구려사를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선 모두가 탐욕을 거두고, 겸손한 마음으로 역사의 교훈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울주 천전리 각석''안악 3호분''덕흥리 고분벽화''무령왕릉 지석''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비''진흥왕순수비''사택지적비''경주 황남동 목간' 등 모두 17편의 글이 실려 있다. 소장 역사학자들의 대표적 학술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소속 고대사 분과의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