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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프랑스 '파업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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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남부의 상업지구 플랑드 캉파뉴에서 노동자 100여 명이 '더 일하고 더 벌자'라는 구호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시위를 벌인 것이다. '주 35시간 노동제를 보장하라'거나 '노동자의 휴식 권리를 존중하라'는 등의 구호는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일하게 해달라고 시위하는 장면은 여간해선 보기 어렵다.

더욱 흥미 있는 건 노동자들의 시위가 노조를 겨냥했다는 점이다. 플랑드 캉파뉴에서는 지자체의 특례규정에 따라 일요일 영업이 허용돼 왔지만 노동자민주동맹(CFDT), 노동총동맹(CGT) 등 노조단체가 행정소송을 제기해 4월 특례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노조단체를 비난하며 다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지자체에 요구하고 나섰다.

프랑스 강성 노조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수년간 파리에서 살았던 한 영국기자는 '메르드(개똥을 뜻하는 프랑스 속어)에서 보낸 1년'이라는 소설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파업이 프랑스의 최고 국민 스포츠라고 표현했다. 파업 개시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팀워크를 보면 팀원들이 '주장'인 노조를 얼마나 깊이 신뢰하는지 느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이후 근로의 미덕이 강조되면서 노동자들이 노조에 등을 돌리는 모습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 플랑드 캉파뉴의 지자체장은 일요일 영업을 재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거론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일요일 영업을 통해 보장되는 300유로(약 36만원)의 특별수당이 그들이 주장하는 쉴 권리보다 노동자들에게 훨씬 달콤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사르코지가 노조의 저항 속에 법안을 통과시킨 '최소 서비스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철도 등 대중교통이 파업할 때 최소한의 인력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노조는 '최소 서비스제' 또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앞으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가 '최소 서비스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인에게 휴가는 애인만큼이나 소중한 것으로 통한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돈 없어 휴가를 못 가는 사람이 800만 명에 이른다. 이게 프랑스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파업 타령에 시위 협박으로 일관하는 노조에 등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