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실체 규명 안돼 맥풀린 수사/술롯머신 대부 조사 어떻게 돼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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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천 치안감과 직접 연계혐의는 못밝혀/폭넓은 비호세력의 훼방설까지 나와
천기호치안감의 구속으로 슬롯머신계 대부 정덕진씨의 배후세력 수사는 본격화되는가 아니면 아직도 답보상태인가.
현역 치안감의 구속이라는 수사성과에도 불구하고 서울지검 신승남3차장검사는 13일 오전 『천 치안감과 정씨의 연계혐의를 밝혀내지 못했으며 수사결과 드러난 정씨의 비호세력은 아직 없다』고 공식확인했다.
검찰의 이같은 태도는 수사기밀을 보호하기 위한 연막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3일 정씨 검거때 배후세력 규명을 호언하던 당초 모습에 비추어보면 한참이나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의 「맥풀린」 수사태도는 다음 두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검찰이 당초 오락실 운영과 탈세로 치부한 호화·사치생활자에 대한 수사차원을 넘어 정·관·재계에 폭넓은 비호세력을 가진 「한국판 마피아」를 척결한다는 대대적인 수사홍보로 적잖은 부담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11일밤 천 치안감을 소환하자 경찰에서 『궁지에 몰린 검찰이 「꿩대신 닭식」 수사를 펼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낸것도 이같은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즉 검찰은 그동안 내사와 압수수색을 통한 수사결과 배후세력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자 정씨와 무관한 오락실 업자를 추궁,경찰간부의 수뢰비리를 밝혀낸 것일뿐,정씨와의 연계여부가 드러나지 않은 천 치안감 수사로 배후세력이 밝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4일 구속된 정씨의 1차 구속만기일(10일)을 넘긴 검찰의 수사가 23일 정씨 기소단계에 이르더라도 오락실 업주들과 경찰의 공생관계 사례를 추가로 확인하는 이상의 배후세력의 규명은 어려울 것이라는 성급한 예상도 제기되고 있다.
또다른 해석은 수사일선과 지휘부와의 이견이나 정씨 비호세력의 수사훼방으로 수사가 답보되고 있다는 풀이다.
수사진의 내사가 진행되던 3월말부터 정씨측은 수사검사의 직속상관을 지낸 전직 부장검사출신 변호사를 내세워 수사진과의 접촉을 시도해왔으며 정씨 구속이후 수사진은 『외압성 수사격려전화』에 시달려왔다는 점에서 검찰내부의 수사기밀누설 의혹까지 제기돼왔다.
따라서 수사검사의 집요한 추적과 정씨 검거에 앞선 압수수색 및 내사가 충분했다고 가정한다면 검찰의 수사답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검찰이 ▲10대 시절부터 폭력배들과 뒤엉킨 바닥인생을 경험해온 정씨의 순순한 자백과 ▲수십년간 현금장사인 슬롯머신업소 운영으로 단련된 정씨의 예금계좌 추적에 비호세력 수사결과를 기대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조직 내부자관련설이 언론에 보도된 8일 돌연 공개수사 상황브리핑이 중단됐으며 이에 앞서 정씨의 안기부 고위간부 및 청와대 관계자 관련진술 및 태림회 관련설에 대한 검찰 지휘부와 수사진 사이의 확인이 시인과 부인으로 엇갈리는 등 혼선을 빚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정씨 비호세력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가설도 설득력을 갖는다.
결국 「한국판 마피아」 척결을 내세운 검찰은 수사의지는 용두사미식 수사결과가 초래할 의혹과 비판을 감안,유착경관은 물론 배후세력 전모를 드러내는 당당한 수사결과로 반드시 뒷받침 돼야만 한다는 것이 정씨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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