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 배달 갈수록 더딘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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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부산 등 대도시 내에서 1∼2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던 우편배달이 3∼4일, 심지어 1주일 이상 걸리는 사례가 늘고 있어 이용자 불편이 커지고 있다. 이는 대도시에서 지방, 해외 배달 우편물도 비슷한 형편이어서 심부름센터 등 사설업체나 값비싼 외국배달전문업체를 이용하는 경향이 높아지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은 매년 12%이상씩 늘어나는 엄청난 우편물량에 집배원 및 장비의 절대부족, 거북이 걸음의 대도시 교통지옥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총무처의 과도한 인력 억제 방침에 따라 체신부가 매년 필요 집배인원의 50%도 충원치 못해 우편 체증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시중 15개 은행카드 사용결제를 맡고있는 한국BC카드주식회사의 담당직원인 정모씨(25)는『매달 대금 결제 2∼3일 전후만 되면 고지서가 너무 늦게 배달되거나 오지 않는다는 항의전화가 통화량의 50%이상』이라고 말했다.
정씨에 따르면 12일 결제의 경우 약 보름전인 전월25∼28일, 27일 결제카드는 15∼18일 우편으로 발송하는데도 이처럼 제때 배달되지 않는다는 항의전화가 몰린다는 것.
실제로 서울강남의 한 우체국 집배원 이모씨(39)는『결제날짜가 지난 BC카드결제고지서를 왜 이제야 배달해주느냐』는 항의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BC카드는 이 때문에 이용자들이 전화로 은행카드 사용 결제 대금을 확인하고 따로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는 창구를 마련해두고 있다.

<기업 홍보물 급증>
또 주로 홍콩·중국 등지에 간단한 플래스틱 제조기기를 수출하고있는 최모씨(38·서울)는 『주문이 왔을 때 아예 빠른 우편인 스피드 포스트나 외국배달업체인 DHL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등기속달로 부치면 도착 날짜가 들쭉날쭉한데다 언제 도착할지 몰라 신용을 지킬 수 없다는 것.
최씨는『대구의 생산공장과 우편으로 품목명세원본 등 각종서류를 주고받는데 전에는 3∼4일밖에 안걸렸으나 요새는 1주일이상씩 걸린다』고 불평했다.
김모씨(58·서울 봉천동)도 최근『청첩장이 하루 늦게 배달돼 친척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매우 난감한 처지를 당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회사원 박모씨(32·서울)는『지방도시의 부모님이 갖고 계신 의료보험카드를 3개월마다 서울에서 검인 받아야 하는데 우편은 1주일씩 걸려 고속버스편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편배달이 이처럼 늦어지는 것은 우선 과거에는 드물었던 신용거래, 각종 기업홍보물 등이 전체 우편물중 60∼70%를 차지하는 등 급증하고 있으나 배달 인력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
체신부가 실시한「우편이용 실태조사」에서도「빠르다」고 응답한 사람이 지난85년 36%에서 91년에는23%로 크게 낮아져 지각우편물의 증가추세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체신부가 집계한 지난해 국내의 우편물수는 서신·소포 등 모두 합쳐 28억4천1백80여만통으로 4.5t트럭 3만여대 분량.
이 가운데 50∼60%가 서울에서 접수되고 있으며 이중 60%는 시내 배달물, 나머지 40%는 지방으로 가는 우편물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편물은 지난 83년의 11억통에 비해 2.5배나 늘어난 것이며 매년 평균12%씩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의 예상 우편물수는 약30억통.
이에 비해 전국 3천4백20여개의 우체국에 배속돼 있는 집배원수는 현재 1만2천4백70여명에 불과, 적정인원에 비해 1천8백명 가량 부족한 실정이다.
체신부 서순조 우정국장은『이 때문에 집배원들이 대도시에서는 하루 적정 배달량의 3배나 배달해야 하는 등 혹사당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적정량 3배 배달>
대도시와 지방의 집배원1인당 하루 적정 우편 배달량은 각각 8백통과 4백통으로 20∼10㎏정도. 그러나 현재 대도시에서는 2천여통, 지방에서는 많은 곳이 5백여통씩 분담되고 있다.
무게로 환산하면 대도시에서 집배원1인당 하루에 80∼1백㎏을 소화해야 하는데 연하우편물이 몰리는 연말이나 선거철이 되면 1백30∼1백50여㎏에 이른다. 무게로 따져 적정량의 최소 4배 이상이며 집배원들은 우편물 배달로 과거 하루 20∼25㎞를 걸었으나 요즘은 40㎞로 무려 1백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셈.
이같은 과중한 업무속에 지난 90년 경북 진주의 한 집배원이 엽서 53통을 배달하지 않고 불태웠고, 서울 강남의 어떤 집배원은 우편물1천여점(30㎏)을 고물상에 팔아 넘겨 충격을 주기도 했다.
또 이듬해 경기도남양주군의 어떤 집배원은 우편물 중 미처 배달치 못한 1백여통을 숲속에 파묻었다가 적발돼 모두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경우 매월 우편물 배달 부하 집중기간은 각종공과금고지서가 몰리는 11∼16일, 은행카드 결제 고지서가 발송되는 13∼18일, 의료보험 등 납입청구 등이 몰리는5∼15일 등이다.
서울우편집중국 이정길 국장은『이 기간중 각종 고지서가 약1천2백만통이나 쏟아져 들어와 유효 기간내 배달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집배원직이 이처럼 과중한 업무 증가율 때문에 3D직중 하나로 인식돼 이직률이 88년 7%에서 89년 10%, 지난해에는 12%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지난해 집배원 이직률이 무려 20.3%를 기록하는 등 우리나라의 국가공무원 평균이직률 2.6%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협소한 도로에 극심한 교통난, 연간 26%의 가구가 이사로 거주인이 바뀌는 것도 우편배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커다란 원인.
서울의 교통사정은 현재 도로율 10.8%에 차량이 1백20만대를 넘어 도심지 주행 시속이 20㎞ 이하로 떨어져 있는 실정으로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수도권의 20개 지역 5만2천2백여가구가 동일 번지내 다세대가구로 문패가 제대로 없는 주택이 대부분.
체신부 집계에 따르면 동일 번지내에 가장 많은 가구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미아1동791로 무려 7천9백63가구가 거주중이다.

<잦은 이사도 한몫>
이어 봉천동 산101과 102가 각각 5천7백35가구와 5천4백40가구로 2∼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동일 번지내 1백가구 이상 거주지역이 90개지역에 11만여가구나 되고 있다.
집배원 민모씨(53·서울)는『항상 사인펜 등을 휴대, 다닥다닥 붙어있는 문패 없는 이런 주택 벽에 통반은 물론 주거자 이름이 바뀔 때마다 적어놓고 온다』고 말했다.
체신부는 날로 극심해지는 우편배달체증을 조기 해소키 위해 올해 서울 자양동에 제2우편집중국을 설립하고 부족한 집배원 1천8백명을 증원할 계획이다.
또 우편물의 최단시간소통을 위해 부산·대구·광주·인천·대전 등 5개도시에도 우편집중국을 신설한다는 것.
이와 함께 대당 하루 7천여통씩을 배달, 집배원 3인몫을 할 수 있는 우편물 전문배달차량을 현재 93대에서 올해 60대 더 늘리고 오토바이도 8백대를 증차할 예정이다.
서울의 제2우편집중국은 연건평 1만7천4백여평에 지하2층·지상3층 건물로 하루 약3백50만통의 우편물을 자동분류, 대도시 우편소통을 원활히 한다는 것.
이 같은 대책 가운데 가장 시급하면서도 불투명한 것은 집배원 증원문제. 집배원은 기능직 국가공무원으로 증원은 총무처의 승인을 얻어야하는데 지금까지 체신부의 증원 요청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는 것. 총무처는 공무원 채용상의 형평과 예산 등을 이유로 체신부의 집배원 증원 요청에 지난 90년 23%, 91년 47%만 증원시켜주었을 뿐이다.<이기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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