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향기] 신춘문예, 羽化를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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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또 다시 신춘문예라는 축제에 주인공으로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한데 얼크러져 며칠을 멍청하게 보냈다.

지금부터 4년 전, 앓고 있던 이명(귀울림)이 심해져 직장을 그만 뒀다. 청각장애로 인해 제대로 업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체 결점으로 보나, 마흔세살이란 나이로 보나 새로운 직장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뤄두기만 했던 소설을 쓰기로 작정했다. 직장 다닐 때 그룹 사보와 계열사 사보에 콩트가 당선된 적이 있어 나름대로 믿는 구석도 있었는데 네번 도전에도 결국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슬픔도 떼로 몰려오는가 보다. 아내마저 지난해 큰 수술을 받게 돼 유일한 수입원도 끊기게 되었다. 더군다나 수술 후유증이 5년이나 지속돼 그동안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나날이 궁핍해져 가는 가정 경제. 아내는 올해까지만 뒹굴고 - 소설 쓴다고 끙끙거리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최후 통첩을 하였다. 올 연말께면 통장의 잔고도 바닥이 난다고 덧붙이면서.

마냥 축 늘어져선 안 되겠다 싶어 기분 전환도 할 겸 도서관에 들렀다. 서가 앞에만 서면 흡사 왕비 간택이라도 나선 대비마마의 심정이 된다. 많고 많은 책이 내게 선택되기를 기다리며 얌전히 꽂혀 있는 것이다. 내 심사가 울적해서 그런지 쉽사리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를 수 없었다. 그러다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 하는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이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그 시인의 가난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또 어촌 사람들이 갯벌에서 낙지를 잡으려고 팔을 집어넣다가 조개껍질에 베여 피를 흘리기도 하는 그 무서운 삶의 현장에서 나는 얼마만큼 비켜서서 살아왔던가.

내 꼴이 영 못 미더웠는지 아내는 보험이라도 해야겠다며 불편한 몸으로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설이고 뭐고 다 접어두고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 한사코 가기를 꺼렸던 '청각장애인 복지회관'에 가서 구직상담을 했다. 희망 급여를 물을 때 70만~80만원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심한 모멸감이 엄습했으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청각장애 6급 판정을 받은 지 10여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30일에 있었던 일이다.

새해에는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겠다. 일을 하면서 또 다른 꿈을 꾸기 위한 준비를 하리라. 천천히 매일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신념을 갖고서.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벌레같은 삶에서 벗어나 나비가 될 수 있으리라.

김경환(47.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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