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동 편지-‘바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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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02면

제목 때문에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1980년대 초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2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날렸던 정윤희가 80, 81년 2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기염을 토했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같은 ‘새’ 시리즈는 노골적인 작명으로 손님깨나 끌었죠. 에로 비디오 ‘젖소 부인 바람났네’ 때문에 가만히 있던 젖소들이 욕먹은 사례까지를 포함하면 제일 못난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오물 튀기는 격이랄까요.

하길종(1941~79) 감독의 75년 작 ‘바보들의 행진’과 이장호 감독의 82년 작 ‘바보선언’(사진)은 ‘바보’란 단어로 묶어 생각나는 영화들입니다. 뜬금없이 웬 바보 타령이냐고요. ‘디 워’를 들고 돌아온 심형래 감독이 자신을 ‘바보 영구’의 바보로만 여전히 기억하는 이들에게 섭섭함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레 한국 사회에서 바보란 어떤 의미로 흘러왔나 생각해 보게 됐죠.

하길종과 이장호 감독이 ‘바보’에 실어 보낸 70년대 중반과 80년대 초 대한민국은 어리석고 멍청한 바보들의 땅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유신시대를 검열로 만신창이가 된 채 통과했던 하길종은 ‘바보들의 행진’에서 주인공 병태의 입을 빌려 “지금은 꿈이 없어”라고 말합니다. 7년 뒤 이장호 감독은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감독의 유언으로 중얼거립니다. “사람들은 영화엔 관심이 없고 스포츠에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화감독은 혼자 죽어 버렸습니다.”

우리 시대와 더 가까이 있는 ‘바보선언’은, 해설자로 나오는 아이 설명(목소리)에 따르면 “바보 같은 어른” 동칠(똥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시대를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음악·음향만으로 이뤄진 화면은 블랙 코미디풍으로 흘러가죠. 달동네에서 내려온 절름발이 동칠(김명곤)이 첫눈에 반한 가짜 여대생 혜영(이보희)을 택시로 납치하려다 운전사 육덕(이희성)과 얼키설키 엮이는 장면은 장난과 진지함이 뒤섞여 돌아치며 기이한 낯섦을 불러옵니다. 청량리 오팔팔에서 몸을 팔지만 책 보따리를 패션 삼아 여대생을 꿈꾸는 혜영이 두 남자와 떠나는 짧은 여행은 ‘시대 풍자’에 충실한 면모를 보입니다. 홀쭉이 동칠이와 뚱뚱이 육덕이가 일하는 목욕탕이 연회장으로 돌변하는 대목은 상류 사회가 뱉어내는 배설과 허위의식이 절묘하게 접목되는 순간이죠.

대마초 사건으로 몇 년 꿇는 사이 사회에 눈뜬 이장호 감독이 전두환 장군이 집권한 80년 초 한국 사회에 한 방 먹이는 솜씨는 82년 당시엔 강펀치였다고 기억됩니다. 여의도 광장 국회의사당 앞에서 두 남자가 옷을 벗어젖히며 질펀하게 펼치는 병신춤으로 정치한다는 ‘놈들’에게 ‘엿을 먹’입니다. 그들은 바보를 선언한 민중이지만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자이기에 행복하다”고 했던가요.

그러고 보니 한국 역사에서 ‘바보’는 시대마다 답답한 현실을 뚫어주는 통기구 구실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마다 제가 더 잘났다고 난리를 떠는 속에서 ‘나는 바보다’라며 비켜서는 큰 그릇의 힘 말입니다.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죽어가며 남긴 마지막 대사가 떠오르네요. “나 죽으면 너희들을 누가 웃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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