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니 코엔 솔랄 저 『사르트르』「카페 철학자」의 생생한 일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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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장 폴 사르트르가 80년 4월 75세로 타계했을 때 프랑스 언론은 그를 『몽테뉴적인 계몽주의 지식인으로서는 최후의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철학과 분과과학의 구분을 넘어서 모든 지적 영역에서 일관되게 비판적 관점을 제공해온 그의 업적을 치하하는 이런 표현은 다른 측면에서 읽자면 그와 같은 전방위 지식인이 다시는 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은 인문주의적 교양으로도 체제에 맞설 수 있었던 행복한 시대가 이제 종말을 고했음을 상징한다.
프랑스의 지성사가인 안니코엔 솔탈이 쓴 『사르트르』는 수많은 사르트르 연구서·전기 중 그 내용의 정확성과 방대함에서 단연 손꼽히는 책이다. 거의 모든 자료를 동원한 듯한 꼼꼼한 묘사로 그녀는 사르트르의 다분치 논쟁적인 문체의 배후에 숨어있는 관대함·연약함 등 인간적 면모를 감동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사실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는 개별장르에서는 어느 것에서도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소설가로서의 그는 라이벌(?)인 카뮈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구토』와 같은 소설이 얼마나 관념적으로 생경한가를 상기해 보라.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지 않게 하는 모든 상황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장인적 전문성 유무라는 진부한 판단기준을 무력하게 만든다. 오히려 그런 전문성이 얼마나 지식인 본연의 비판적 기능을 멍들게 하는가를 그는 명석하게 파헤친다. 대개의 지식인들이 일단 판단을 보류하고 싶어하게 마련인 현실적인 시사문제에 대해서 항상 즉각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던 그의 자세는 그를 오히려 작가로서보다는 저널리스트·비평가로 보게 만든다.
그에게 붙여졌던「카페의 철학자」라는 호칭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이른바 제도권 철학자들이 그의 철학적 경박성을 비꼬기 위해 사용한 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철학의 본질을 지적하는 것으로도 읽혀진다. 현실을 떠난 철학이 얼마나 공소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그에게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이야말로 철학의 우선적인 임무에 다름 아니다.
코엔 솔랄은 생전에 그와 절친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평생 카페와 호텔을 일터로 삼고 글을 써온 이 「메시아적 보헤미안」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르트르 이후에 등장한 프랑스의 지적 대가들인 롤랑 바르트나 미셸 푸코가 보여준 지배권력의 문화적 헤게모니 형성의 정교한 분석을 이미 알고있는 우리로서는 그의 철학은 순진한 정신주의적 과격설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분석 배후에 흐르는 일종의 비관주의적 정조를 본다면 새삼 사르트르의 지적건강성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청년으로서의 사르트르 이미지를 되살려주는 짓만으로도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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