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명 인질 어떻게 지낼까 … 풀려난 외국인 증언 통해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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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남성이 27일 가즈니주 고원지대에 있는 모스크(이슬람 사원) 입구에 앉아 있다. 한국인 인질 22명이 이 지역 어딘가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준사막지역으로 물이 부족해 풀이나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 힘든 척박한 땅이다.[가즈니 AFP=연합뉴스]

28일로 탈레반 반군에 의한 한국인 인질 사건이 10일째로 접어들었다. 벌써 인질 한 명은 유명을 달리했다. 백종천 대통령 특사는 28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만나 남은 인질 22명이 무사히 석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다.

인질들은 가즈니주 카라바그의 산악지역 2~7곳에 분산 수용돼 탈레반 대원들의 엄한 경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은 해발 2000m의 건조한 고산지대로 일교차가 15~20도에 이른다. 열악한 환경과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인질들의 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과 다름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인질 중에는 지병으로 약을 복용해온 사람도 몇 명 있다. 약은 다 떨어지고 물과 음식도 맞지 않아 이들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피랍자 임현주(32)씨는 26일 미국 CBS방송과의 짧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2001년 9월 탈레반에 열흘간 억류됐다 풀려난 영국 '선데이 익스프레스' 기자 이본 리들리와 올 3월 피랍 보름 만에 석방된 이탈리아 기자 다니엘레 마스트로자코모 등이 밝힌 경험담을 토대로 인질들의 현 상태를 추정해 본다.

◆식사와 물=주식(主食)은 밀가루 반죽을 구워 만든 얇고 둥근 빵이다. '난'으로 불리는 이 지역 전통 음식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에 빵을 집어먹는다. 빵에선 누린내가 나고 모래가 씹히기도 한다. 물통 속 식수는 뿌옇다. 석회질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군과 다국적군이 주변 지역을 포위하면서 보급로가 끊긴 탓인지 음식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몇 명은 지병이 악화돼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원에게 환자를 위한 약을 부탁했지만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움막 안 생활=피랍된 뒤 제대로 씻을 수 없다. 먹을 물도 부족한 곳에서 목욕은 생각하기 어렵다. 불결한 환경에서 씻을 수도 없으니 피부엔 발진도 생겼다. 파리가 윙윙대며 움막 안을 맴돈다. 한낮에는 기온이 40도까지 오르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최고 기온이 40도까지 치솟는 게 예사다. 그래도 움막 안은 낫다. 경비들은 화장실 가는 것을 빼고는 외부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은신처 이동=낮 동안 폭염을 피해 은신처에 숨어 있던 탈레반들은 어둠이 깔리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부군에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자주 옮겨 다니고 있다. 어두운 밤길을 앞만 보며 걷는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입 속에 모래가 들어오기도 한다. 일부 여성 인질은 감시가 덜한 민가로 이동했다는 보도(교도통신)도 나왔다.

◆심리상태=밤중에 산악 지대를 한두 시간 걷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된다. 오늘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해 온다. 밤마다 두려움과 가족들 생각에 잠을 설친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동이 터 오른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막사 밖에선 탈레반 무장대원들의 아침 기도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폭격 소리가 들려오자 반군들은 기관총을 하늘로 겨냥하며 '지하드(성전)'를 외친다. 이 생지옥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유철종 기자

피랍 10일째 인질들 상황

※외신과 경험자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한 추정

▶날씨:낮기온 최고 40도까지 치솟고 일교차는 20도

▶열악한 환경:산소 희박한 고산지대의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 사막과 산악지대를 가로지르며 수차례 은신처 옮길 수도

▶식사:현지 음식으로 한국인 입맛에 안 맞고 마실 물도 부족

▶건강 상태: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극도의 스트레스 받음

▶개종(改宗) 압력:이슬람으로 개종 요구한 전례 있음. 하루 다섯 차례 이슬람 기도 강요할 가능성도

"살아야 한다" 거친 '난' 씹으며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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