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불능」의 세계/김진현(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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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러번의 워싱턴방문중 처음으로 포토맥강가의 벚꽃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하고 탐스러운 벚나무 무리가 강가와 호숫가를 꽉 메웠다. 한세기전 일본의 기증으로 심어진 이곳 벚나무는 미일우호의 상징이 됐다.
그 화려하나 1주일도 못가는 벚꽃계절에 맞춰 첫 대면한 클린턴­미야자와(궁택희일) 미일 정상회담은 탈냉전의 변화 그대로였다. 클린턴이 「냉전시대 협력관계는 이미 지나갔다」고 선언하면 미야자와총리는 「새 시대의 새 필요」에 대처해야 한다며 미국의 「일방적 위협」이나 관리무역을 거절한다고 맞받았다.
○미일 무역전 「예측불가」
미 무역적자의 60%를 차지하는 일본과의 무역을 어떻게 균형시킬 것인가는 미국의 경제·기술·외교의 핵심이다. 바로 이 대일편중 적자때문에 클린턴정부는 전후 미국이 이끌고 고무해왔던 자유무역제도를 버리고 목표지향·결과추구의 관리무역으로 바꾸고 있다.
미일무역협상의 「실전」이 전개된 마당에 우리는 그 결과가 한국을 포함하는 아­태지역 전체의 무역순환과 산업구조 조정을 평화롭게 진전시킬 것인지,아니면 미일충돌로 아­태지역내 블록화와 혼란이 올지는 사실상 우리에겐 사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질문을 받은 미국 외교의 실질적 책임자는 안보밑에 경제·무역을 두었던 과거에서 앞으로는 안보와 경제이익을 같은 비중으로 두겠고 구체적 결과를 추구하고 정치적 실정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당분간 미일관계는 불편할 것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미국의 대일 목표지향형 무역관리는 분명하다. 그러나 결과가 어떨 것인지에 뚜렷한 전망을 내리는 사람이 없다.
37년간의 기자생활에서 막 은퇴한 돈 오버도퍼 워싱턴포스트 외교기자를 다시 만나고 그가 지난 1월에 쓴 『클린턴과 아시아』를 읽게 됐다. 여기서 놀라운 표현을 보았다. 미 국무부 관리들은 주저없이 대일무역 역조는 「통제불능」(Out of Control)임을 자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제기를 회피하거나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듯한 인상이다. 클린턴과 그의 막료들이 몹시 외롭고 피곤할 것 같은 전망이다.
지금 워싱턴의 책방에는 카터 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교수의 신간 『통제불능』이 새 베스트셀러로 등장했다. 통제불능이라 함은 지금 21세기를 향해 가는 세계는 유럽의 분열,공산권의 경제 정치파산,회교공화국들의 분출,선·후진국의 빈부격차 확대,핵확산,독일·중국·일본의 지도력부족,미국의 감각적·물질적 과잉충동으로 치닫는 「관용적 부」의 악덕 등으로 인해 파편화·단절화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상호의존 이해 앞서야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인류의 상호의존조건을 이해하고 내부와 외부욕망의 적정한계를 규정하는 도덕합의가 있어야 하며 이런 도덕성에 대한 정치적 요구야말로 세계의 통제불능을 막고 생존을 보장하는 피할 수 없는 도덕적 명제라고 보고 있다.
오랜 친구이며 동지인 마이클 노박교수는 최근 『가톨릭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대작을 썼다. 1904년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필적하는 도전이다. 동구와 라틴아메리카라는 가톨릭 문화권에 자본주의의 새 지평을 열고 민주화의 제3의 물결 즉 「가톨릭물결」이라는 새 운동을 인도코자 노력하고 있다. 그 노박에게서 클린턴에 대한 강한 비판을 들었다.
미국의 문제는 정치에서의 민주주의나 경제에서의 자본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문화는 가족의 부활,교육의 질,종교의 견실,개인의 능력으로 가야 하는데 클린턴은 반대로 「문화적 좌익」으로 흘러 동성연애,폭력적 예술과 언론조장,쾌락주의 문화를 고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불행한 일이나 공화당으로서는 좋은 일이라 평했다.
이곳에서 미국 친구들로부터 듣는 한국얘기는 모두 좋은 평가들이다. 대미무역적자는 균형으로 돌아섰고 지난 12월의 대통령선거와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정책은 일본을 앞지를만큼 민주정치를 앞당겼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의미있게 알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과기처장관 재임중 91년부터 추진했던 한미과학기술동맹과 재단설립제안이나 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의 산업기술동맹제안에 모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우리쪽에서도 방법·절차·기관을 구체화하고 미측,특히 의회측과 대화를 강화해 가면 결실이 가능하게 되었다. 통제불능의 미일,그리고 아·태지역 무역순환을 통제가능케 하며 아­태지역 평화와 지구적 차원의 평화에 기여하는 구도를 적극 주도적으로 이끌 책임이 우리 생존을 위해 우리 스스로에 있다.
○아­태평화는 우리 손에
아직도 한미관계에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미일·미중관계의 변화,북한핵문제,인권보편원칙의 미국정책 등으로 통제불능상태로 갈 수도 있는 지뢰밭이 남아 있다. 미국에 있어 현재 한국은 지역협력의 대상이기는 하나 미·중과 같은 세계적 관계의 대상은 아니다. 지정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이 일본과 중국의 장래를 걱정하는데,클린턴과 미야자와가 현상유지를 거부하는데 직접적·1차적 이해당사국인 우리가 오히려 현상유지적이거나 패배주의적인 점은 우리 스스로 탈각해야 할 새 과업이다.<워싱턴에서><칼럼니스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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