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기업들 “비상”/「클린턴쇼크」이후 치솟는 엔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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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동차·가전·조선업계 환차손 심각/불당 백엔대 돌파 예상도/「글로벌화 전략」으로 대비
「클린턴 쇼크」로 일본 엔화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 17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엔고용인」 발언을 한뒤 19일 동경·뉴욕·런던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백11엔대에 들어섰다. 일본의 방대한 무역흑자를 줄이는 별다른 묘수가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등 서방선진7개국(G7)은 어느 정도의 엔고는 묵인하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 총리는 19일 G7의 시장개입협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협조같은 것은 필요없다』고 밝혔다.
외환전문가들은 앞으로 1개월간 엔화는 달러당 1백4∼1백16엔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에선 가까운 장래에 달러당 1백엔선까지 치솟을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한편 일본의 수출기업들은 비상이다. 이들은 이번 엔고가 2년간 계속된 불황으로 기업이 인력 및 설비과잉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찾아와 내수경기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85년 엔고때보다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기획청은 엔화가 2월상순의 달러당 1백25엔에서 10% 오른 상태가 1년간 계속될 경우 상품수출 2.02% 감소,수입 0.6% 증가,설비투자 0.39% 감소,민간소비 0.04% 증가 효과를 가져와 일본의 국민총생산(GNP)을 0.48% 끌어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엔고가 85년도 엔고 때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85년의 경우 엔화가 연평균 60엔이나 올랐으나 이번에는 1년전에 비해 20엔정도밖에 오르지 않았고 수출기업의 환차손과 원자재수입 등 환차익이 거의 비슷해 서로 상쇄될 수 있다고 본다. 또 단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이 악화되더라도 소비자들의 구매력 증가로 중장기적으로 엔고가 플러스가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 가운데 자동차·가전·조선·기계 등 수출업종이 타격이 크다. 달러당 1엔이 오를 경우 도요타(풍전)는 연간 1백억엔,히타치(일립)제작소는 28억엔,닛산(일산) 자동차는 50억엔의 환차손을 각각 본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제지·석유화학·전력·가스 등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기업들은 환차익을 누린다. 달러당 1엔이 오를 경우 동경전력은 40억엔,일본제지는 3억5천만원엔의 환차익을 본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들은 지난 85년 플라자 합의후 88년까지 엔화가 계속 상승커브를 그리자 90년에는 엔이 달러당 1백엔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생산거점의 해외이전과 해외로부터의 자재조달확대 등 대비책을 세워왔다.
수출기업들은 수출가격인상·경비절감과 함께 생산거점의 해외이전·역수입 등 글로벌화 전략으로 엔고 극복에 나서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92년부터 이미 미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유럽·일본·중동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도요타의 지난해 미국현지생산 자동차수출은 4만5천대로 전년보다 배로 늘었다. 혼다(본전)자동차도 지난해 5만6천대의 미국현지생산 자동차를 일본(2만대) 등 해외에 수출했다.
아사히(조일) 신문은 20일자 사설에서 『이번 엔고가 일본의 방대한 무역흑자가 계속되는 한 언제나 예상되는 수준』이라고 밝히고 산업구조의 하이테크화로 엔고를 극복하자고 주장했다. 플라자합의후 일본기업들이 더욱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처럼 이번 엔고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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