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달 전 '족집게' 경고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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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아프간 탈레반이 수감 중인 동료 석방을 위해 한국인들을 납치한다는 정보가 있으니 국민 여러분께서는 아프간 여행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입구에 있는 안내문(사진)의 내용이다. 명의는 인천공항 테러보안대책협의회 의장이다. 이 앞에서 탈레반에 피랍된 분당 샘물교회 단기 봉사단원 중 일부가 손가락으로 'V'표시를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안내문에서 우려한 사태가 실제로 발생했다. 안내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월 외교통상부(외교부)는 현지 주재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탈레반 세력이 수감 중인 동료 석방을 위해 한국인에 대한 납치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첩보 내용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외교부는 2월 5일자로 보도자료를 내고 아프간 여행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신변안전 조치를 허술하게 한 상태에서 육로이동을 많이 한다"며 한국인이 표적이 되는 이유도 설명했다. 이번에 피랍된 이들을 초청한 한민족복지재단을 포함해 아프간에 활동가를 파견한 시민단체에도 이 같은 내용을 알리는 공문을 발송했다.

같은 달 인천공항에서는 외교부가 입수한 첩보에 따라 국가정보원 인천공항분실 부실장이 주관하고 공항경찰대와 인천공항공사 보안 관계자가 참석하는 '테러보안대책실무협의회'가 열렸다. 회의 결과 아프간 여행 자제를 요청하는 경고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인천공항공사 보안검색팀은 협의회의 직후인 8일 아프간 여행의 위험성을 알리는 안내문을 제작해 설치했다.

결국 정부당국이 피랍 발생 5개월 전부터 아프간 여행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이 납치사태를 부른 셈이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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