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말하는 '인질범 심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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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피랍 사건 닷새째인 23일 정부가 납치단체인 탈레반과 다양한 접촉 채널을 만들고 있다. 만의 하나 납치 사태가 장기화되면 인질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도 커져 우리 정부의 긴장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납치 사건 전문가들은 "손에 쥔 패가 유리하다고 게임에서 항상 승리하는 건 아니다"고 지적한다. 심리적으로 쫓기는 건 가해자인 인질범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경찰대 표창원(행정학과) 교수는 "납치단체 간부들도 아무런 성과 없이 상대 공격에 의해 궤멸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다른 범죄가 은밀하게 저질러지는 것과 달리 납치 정황이 모두 공개된 현실에서 피를 말리는 도주.은신과 줄다리기 협상을 해야 하기에 피로감이 크다는 것이다. 표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적 지형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납치사건의 특성"이라고 지적했다.

대테러 전문가들은 다수의 인질을 관리하다 보면 구급 사태와 같은 돌발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때 인질범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급상승한다는 것이다. 인질 억류 장소도 협상 과정에서 작지 않은 변수로 작용한다. 장소가 낯선 곳이면 불의의 기습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 심리적인 평정을 잃는 사례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런 변수들을 종합할 때 탈레반은 자신의 거점 지역에 은신했기 때문에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남대 이창무(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납치단체도 인질을 대가 없이 석방하거나 희생시킬 경우 조직 내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납치단체 간부들의 협박에 휘둘리거나 섣부른 무력진압을 하려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2004년 9월 3일 러시아 북(北)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에서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이 1000여 명을 인질로 잡고 있는 체첸 반군을 무력 진압하려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어린이 등 400여 명이 희생됐다.

대테러 협상 전문가들은 "인질들의 안전을 위해선 납치단체가 믿는 중재자를 찾아 그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정부는 아프간 지역의 원로 부족장들에게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정보 소식통은 "협상이 타결돼도 인질 석방까지 2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탈레반이 현재 노출된 장소에서 벗어나 새로운 은신처를 확보할 때까지 인질들을 데리고 다니며 단계적으로 석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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